정끝별 시인은
일상의 언어를 탁월한 시적 언어로 탈바꿈시키는 정끝별(44·명지대 국문과 교수) 시인은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 등 생의 상반된 것들이 부닥치며 만들어 내는 파열음을 깊이 응시하는 시를 써 왔다. '크나큰 잠' 외 14편의 시로 올해 '소월시 문학상'을 받아 시인으로서 웅비(雄飛)의 순간을 맞았다.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삼천갑자 복사빛' 등을 엮었고, 평론가이자 국문학자로서 '패러디 시학', '한국 시의 미학적 패러다임과 시학적 전통' 등 여러 평론집과 연구서를 펴냈다.
문태준 시인은
문태준(38) 시인의 시 세계는 불교적 윤회와 무소유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문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시인이다. '그맘때에는', '가재미', '극빈' 등 이미 시 애호가들 사이에 애송시가 된 그의 시들은 특유의 부드럽고 조용한 언어로 삶을 위로하고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 '맨발', '가재미' 등을 썼다.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진행은 문학평론가 김수이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가 맡았다.
▲ ‘애송시 100편’연재를 마친 정끝별(가운데) 시인과 문태준 시인이 좌담을 통해“독자와 함께 시를 즐긴 시간이었다”고 열띤 호응에 감사했다.
이날 좌담을 진행한 문학평론가 김수이 교수.
―연재 내내 반응이 뜨거웠다. 우리 국민들이 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최근에는 시에 대한 관심이 크게 위축돼 있었는데 이번 애송시 연재가 식어가던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킨 계기가 됐다.
▲문태준=격려 전화와 이메일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할 일인데 대표로 고생한다"며 동료 시인들도 계속 격려해 줬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연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넉 달 넘게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았다. 이제 풀려났다고 생각하니 정말 홀가분하다.(웃음)
▲정끝별=평소 친분이 있던 한 대학 교수가 이메일을 보내 "조선일보에 소개된 애송시들로 학생들 가르치고 있다. 잘 읽고 있으니 힘내라"고 하더라.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시가 바로 교육 현장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고,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도 학교(명지대 국문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연재된 애송시들을 외우게 할 생각이다.
―두 시인의 해설 방식이 아주 새로웠다. 기존의 시 연재에서 볼 수 있던 단순한 시 이론 설명이나 감상기가 아니라 시가 쓰인 곳에서 바로 시 해설을 듣는 현장감이 느껴졌다. 가령 소개된 시가 실렸던 시집의 가격이 600환이었다는 식의 뒷얘기가 읽을거리로 더해져 시평을 풍성하게 했다. 전문지의 이론 소개와 신문의 가독성이 결합해 시 해설의 새로운 모범을 세웠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문=시평 연재를 시작할 때 이 글을 어떻게 쓸까를 놓고 자문했다. 딱딱하게 썼다가 시를 오히려 독자들로부터 떼어놓는 결과가 나온다면 시단과 독자 모두에 죄를 짓는 것 아닌가. 돌이켜보면 나름 성공한 것 같은데, 그것을 확신하게 하는 일화가 있었다. 한 독자가 이메일을 보내와 "우리 집 조상이 남긴 시가 있는데 그분의 시를 보내줄 테니 신문에 해설 쓴 형식으로 써서 보내줄 수 있느냐"고 하더라.
▲정=꼼꼼히 읽고 예리한 지적을 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의 '방'을 내가 '~에서'라고 해석했더니 한 독자가 당시 일어로 '방'은 '~앞'이라는 뜻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시 해설을 연재하며 누구를 가르친다기보다는 "독자와 함께 시를 즐긴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 준 편지였다.
―해설자들이 개인적인 취향으로 시를 고르기보다는 100명의 시인들이 시를 추천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느 한 경향으로 편중되지 않은 다양한 시가 소개됐다.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큰 별인 김소월 김수영의 시와 2000년대 시단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안현미 김경주 같은 시인들의 시가 나란히 소개된 것이 참신했다.
▲문=시 연재를 하며 '베스트 시 100'이 아니라 '애송시 100'으로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처음부터 애송시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해서인지 문학사적 의미를 따지기보다는 입에 착착 붙는 시들이 많았다. 가령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는 음악적 요소가 강해 국민들이 정겹게 따라 부르는 작품이어서 선택된 경우다. 만약 시적인 완성도를 기준으로 했다면 다른 작품들이 추천 받았을 것이다.
―연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는가. 우리 시단 100년의 역사를 단 100편의 시만으로 축약해 보여주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정=연재할 시들의 정본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맞춤법조차 확립되지 않았을 때 쓰인 시들이 다수였고, 개정판을 낼 때 시인 스스로 작품을 고친 경우도 있었다. 사투리 처리 문제도 늘 고민거리였다.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의 원문에 '눈포래'라는 방언이 나온다. 그걸 '눈보라'로 고쳐 소개한 시를 보니 이해하기는 좋은 데 시 원문의 맛이 사라지더라. 독자의 이해를 우선해야 할지, 시인이 고른 말을 살려야 할지, 늘 고민하고 망설였다.
―올해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발표된 지 100주년을 맞았다. 현대시 100주년을 문학사적으로 정리해야 할 필요도 있겠지만, 국민들과 함께 시 부흥 캠페인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시단과 언론이 함께 만든 '애송시 100편' 시리즈는 '시 100주년을 기리는 축제'였다고 생각된다.
▲정=이번 연재로 시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한번은 경제인 친목모임에서 "조찬 모임이 있는데 시 강연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더라. 사회가 돈에만 관심을 보이면 품격이 낮아진다. 문화적 소양을 갖춘 경제 전문가들이 많은,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 연재가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문=지방자치단체들이 문화행정에 관심을 표명하게 된 것도 이번 연재의 보람으로 꼽고 싶다. 서울 강남구가 지난 4월 한 달을 '시의 달'로 선포했다. 버스정류장에 시가 나붙었고, 거리를 달리는 버스에 광고 대신 시가 쓰였다. 시인들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즉석 강연을 하기도 했다. 마산시도 5월 3일 '마산 시의 도시' 선포식을 가졌다. 안산에 시 공원이 만들어진다는 소식도 들었다.
―시 100편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문화적 파급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연재가 일회성 잔치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학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자라나는 나무다. 시의 새로운 100년을 위한 새로운 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정=사실 신문 연재라고 하면 늘 소설 연재만을 떠올렸다. 시가 이처럼 훌륭한 연재가 될 줄은 시인인 나도 몰랐다. 시를 위해 매일 새로운 일러스트가 그려진다는 것도 신선했다.
▲문=이번 연재는 문학이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줬다. 시를 독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조금 다르게 했을 뿐인데도 앞으로 맞을 새로운 시의 100년에 희망을 갖게 됐다. 시가 글로만 읽히거나 낭송되지만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를 찾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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