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7일 토요일

우물안 개구리의 세상구경

이글은 2018년 7월 6일 미주 중앙일보 오피니언 '생활속에서'난에 첫시집 '왕도 부럽지 않소'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평생을 우물안에서 나고 살아온 늙은 개구리가 처음으로 우물 밖을 구경했다면 어땠을까?  아하! 하늘이 이렇게 크고 넓은 줄 몰랐었네!” 첫번째로 그렇게 말했을게다.

     평생 외면해오던 문학에 관심을 갖고 글쓰기를 시작한지가 십년이 넘었다. 노인대학에서 같이 글짓기 공부를 시작했던 문우가 작년에 시집을 내면서 구백편이 넘는 시작 가운데서 백편을 골라 처녀 시집을 냈다는 말에 난 내심 많이 놀라고 또 부러웠다. 그동안 난 모아놓은 시가 칠십편이 채 안 되었다. 원래 난 천성적으로 감성적인 문학소녀가 아니었으니까 라고 자위를 했지만 무척 게을렀던 것도 사실이라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동안 무심한 채 삼사년을 글 한 줄을 안 쓰고 지나친 때가 있었으니 부끄러운 자책도 들었다. 다행으로 삼십여년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하면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글모임이 있는 것을 알고 여기에 나가며 다시 글짓기 발동이 걸렸다.  더 큰 행운은 처음 글짓기를 배울 때도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정말 무딘 내가 글눈을 뜨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큰 스승을 만났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스승을 모시게 되었다.

   세상사 흐르는 강물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흘러 제자리를 떠나가게 되어있으니 무심히 지나면 소소한 일상의 감동적인 순간들, 일생의 역사적인 순간들까지도 모두 구름처럼 흩어지게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때마침 발병이 나서 양쪽 발을 차례로 수술받으면서 오랜 침상 생활을 하고 일 년 가까이 두문불출 하게 되니 시간이 많아졌다. 옛 글들을 모두 꺼내어 다시 하나씩 찬찬히 읽어보니 얼마나 소중한지! 이렇게 기록해두지 않았다면 망각속에 묻혀 연기처럼 사라졌을 테고 그랬다면 얼마나 아까울지 모르는 보물같았다.
      세월이 약이란 말은 참 많은 의미를 갖는다. 상당히 오랜 세월을 글공부를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왔는데도 그동안 눈에 띄지 않게 성숙한 내면이 있었던지 옛 글들을 보니 표현이 서투르고 진부해서 많이 다듬었다. 솎아내고 자르고 새로운 생각을 끼워넣어서 말끔히 정리하고 새로 지은 시들을 합해놓으니 시집 한 권 분량이 되었다. 이것들을 묶어놓고는 나 자신과 나름 꽤 많은 씨름을 했다. 과연 이것을 거금을 들여 세상밖에 내 놓을 것인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공연한  헛손질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허튼 짓이 되진 않을까?

   내 시집에는 꿀물 마신 콩나물이란 시가 있다. ‘보행이 불안정하여 지팡이를 짚고/ 강의실에 오시는 노사/ 평생을 걸어 오른/ 산 등성이 높다// 백발이 무색한 초롱한 눈망울/ 인생을 조망하는 황혼녘/ 눈 부신 노을은 취하도록 아름답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옹기 종기 모여드는 제자들/ 꿀사랑을 내린다/ 진액이 다하도록//
꿀물 마신 콩나물/쑥쑥 자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존경하는 스승으로부터 받는 매는 달고 격려와 칭찬은 세상을 뒤엎을만한 위력이 있다. 평생을 우물 안에서 나고 자란 개구리가 우물 속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튀어나갈 힘과 용기를 갖게 되었다. 결국 내 지난 삶의 꽃들은 한 권의 단정한 시집 왕도 부럽지 않소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어느듯/ 사랑은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그리움은 안개처럼 밀려오는데/ 돌이켜 생갹해보니/ 형제들 중에 제일 못난이/ 미련한 짓 골라가며 하던 나/ 울보에다 / 오줌싸게에다/ 성적은 꼴찌였던 나/ 곁길을 모르고 자라/ 외길로 살아온 칠십여년/ /꿈결 같아라라는 문구 말미에  서명을 하고 미국에 와서 삶에 골몰하느라 연락을 두절하고 지내왔던 먼 친척들에게까지 아 그 어리버리하던 계집애 유자가?”라고 놀란 얼굴을 할 것을 상상하며 책을 발송했다.  유자가 미국 가더니 이런 삶을 살았구나!” 하면서 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져서 숨을 고르느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메세지가 날아들었다.
   글쓰기를 나타내지 않아서 모르고 있던 한 친구는 어제는 냉장고에 삶은 고구마가 딩굴고 있어 물컵과 함께 움켜쥐고 며칠 전 받은 친구의 시집을 안고 햇볕 쏟아지는 뒷뜰 벤치로 나갔다. 온 몸은 스르르 녹고 진솔한 시는 얼마나 내 마음을 녹이는지. 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들과 함께 나도 왕도 부럽지 않구려라는 글을 보내왔다.

   평생 손바닥만한 하늘만 보고 살아온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가서 넓을 하늘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 중이다. 한국 서점가에 나가있지만 설령 안 팔리더라도 일단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