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속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고
더 많은 것들 제 속에 품어 비출 때,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는
확실히 비쳐 온다.
껌종이와 신문지와 비닐의 골짜기,
연탄재 헤치고 봄은 솟아 더욱 확실하게 피어나
제비꽃은 유리 속이든 하늘 속이든 바위 속이든
비쳐 들어간다. 비로소 쇠 조각들까지
스스로의 속을 더욱 깊숙이 흙 속으로 열며.
<1980년>
- 이하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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