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1일 토요일

Antelope Valley Poppy

이 글은 2018년 3월 31일자 미주 중앙일보 오피니언 란에  "파피동산을 만든 한  여성의 집념' 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금잔의 축제

                                
   올봄에 늦은 비가 많이 왔으니 필경 엔틸롭 밸리(Antelope Valley)엔 파피꽃이 많이 필 게다.
   파피꽃 나들이에 남편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두 번이나 내가 우겨서 갔었는데 한 번은 서울서 온 손님까지 데리고 갔었다. 아무 볼거리가 없는 황량한 벌판과 낮은 구릉에 파피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먼 길을 달려가 구경할 만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아갈 듯 찬  바람이 불어 품속으로 파고들고 바람에 섞인 흙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결국 고집스럽게 우기던 내 입장만 미안하고 난처해졌었다. 싱겁게 그냥 돌아올 수 없어 차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로 잔뜩 움츠리고서 찡그린 채 찍힌 사진조차 영 볼품이 없었다.
삼사년 후에 난 또 남편을 졸라서 파피를 보러갔는데 세번째는 정말 많은 파피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십여 마일 전부터 아지랑이 핀 먼 산이 주홍색 거대한 담요를 덮어 놓은 듯 붉게 보였다. 물 주어 가꾼 정원의 꽃이 아니다. 사막성 기후의 초원과 야산의 마른 땅에 야생으로 핀 꽃이다. 차에서 내려서니 눈이 닿는 온 땅이 주홍색 물결로 넘실댔다. 파피꽃이 밝은 봄볕 아래 얼굴을 반짝 들고 웃음을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니 솟구치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왔다. 절로 나비가 된 듯 온 들을 마구 쏘다니며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꽃밭을 누볐다. 집에 돌아와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니 활짝 핀 파피꽃 사진들도 물론 아름다웠거니와 꽃물 흠씬 든 인물사진들도 하나같이 예뻤다.

   파피의 또 다른 이름은 Copa de Ora (Cup of Gold). 이름과 같이 종지모양을 하고 있다. 파피는 코스모스와 같이 꽃대와 잎이 가늘다. 그래서 여린 꽃대가 활짝 핀 화려한 꽃을 받쳐 들고 작은 바람에도 간들거리는 모습이 가녀린 소녀의 화사한 미소를 보는 듯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무리진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는 작은 종들의 합주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이 꽃은 낮에 피었던 꽃이라도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다. 낮에도 해가 구름에 가리거나 기온이 차면 꽃이 오므라들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전에 갔을 때도 제철이었지만 그날의 날씨 때문에 보지 못한 거였다.
1903년에  캘리포니아의 주화로 정해파피는 다년생 식물로 거의가 밝은 노랑색이 아니면 붉은 주홍색이다. 그러나 간혹 흰 꽃도 있고 보라색이나 섞인 색의 꽃이 있다지만 드물다. 키는 6인치정도이고 커봐야 18인치 정도로 키가 작다.
   십오 마일에 걸친 1800 에이커의 광활한 야생 파피꽃 단지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Antelope Valley에 살았던 Jane Pinheiro(1907-1978)라는 한 여성의 꿈을 향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1942년 코로라도 덴버에서 이주해온 그녀는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 아님에도 자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그 지역의 야생화와 동물들의 소상한 그림들도 많이 남겼다.
   아무 특징도 없는 메마르고 광활한 볼 품 없는 사막, 지금도 인가가 거의 없고 점심을 먹을 변변한 햄버거 가게조차 없는 곳인 걸 생각하면 짐작컨데, 단조로운 일생을 살았을 Jane Pinheiro가 자기의 꿈을 처음부터 이렇게 굉장한 설계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 여인의 소박한 꿈이 성실의 방석에 앉아 미풍의 마차를 타니 손끝에서 떨어진 한 줌의 씨앗이 광활한 산과 들을 온통 피피로 물들였다. 금종을 울려 만인을 부르고 금잔의 축제에 초대된 손님들은 홀연히 나비가 되어 꽃바람 타고 꽃물결 위를 흥에 겨워 날며 노니는 오늘이 되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두고두고 오는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지금도 눈을 감으니 봄의 햇살을 가득 담은 금잔을 높이 들고 축제의 노래를 부르는 파피들의 화사한 모습이 눈에 선하고 언덕 위를 넘쳐흐르는 금종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 

·Park Information   http://www.parks.ca.gov/?page_id=627

  • HOURS OF OPERATION:  Park Hours:    Sunrise to Sunset.
  • PARK OFFICE TELEPHONE:  (661) 946-6092
  • REGION - Los Angeles County
    COUNTY -  Los Angeles

Location - Directions

The Reserve is located 15 miles west of Lancaster at 15101 Lancaster Road.
From Highway 14:  Take the Avenue I exit and head west 15 miles.  Avenue I becomes Lancaster Road.
From I-5:  Take Hwy 138 east and turn right on 170th Street West.  Make a left at the end, onto Lancaster Road.  Follow the road two miles.
Latitude/Longitude: 34.72482 N, 118.41271 W

2018년 3월 14일 수요일

수선화와 봄맛

이 글은 2018년 3월 10일자 중앙일보 '이 아침에' 난에 '추억이 싹트는 봄날'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어머! 제 이렇게 자라올라 꽃을 피웠지? 며칠 따뜻하더니 변덕스레 찬 바람이 불고 추워졌었다. 며칠동안 밖을 내다보지 않다가 오늘 보니 어느새 한 이나 자란 수선화가 청초한 노란 꽃을 짝 피우고는 다소곳이 봄을 안고 웃고 있다.
   각 나라의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엘에이는 음식도 다양해서 동 서양 육대주의 과일과 음식이 철을 가리지 않고 거의 다 있어 입맛대로 나라별로 돌아가며 찾아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젊은 날에 뇌리에 각인된 보잘것 없을 것 같은 고향의 옛 음식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한국에 살 때는 긴 겨울을 대비하려면 먹거리 준비가 상당했다. 김장을 담그면 기본적으로 포기김치, 막김치, 김치, 깍두기, 동치미외에도 보쌈김치, 갓김치, 종류별로 열심히도 담갔다. 마른 나물들도 무말랭이 호박 고자리, 가지, 고춧잎, 시래기를 고루 갖추어 마련해 두었었다. 초여름부터 장만한 마늘종, 깻잎, 부추, 풋고추, 무우, 오이, 등을 장과 갈에 장아찌를 담가서 때마다 다양한 부식을 내 먹으며 겨울을 났었다. 살림을 제대로 하는 주부라면 이런 정도는 어느 집이나 기본으로 다 갖추어두고 먹었다.
   지금 이것을 이렇게 열거하다보니 내가 그렇게 하던 장본인인데도 엄청나서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기가 찰 정도로 멀고 까마득한 얘기로 느껴진다.
     이국, 나물, 두릅나물, 달래 된장찌개, 미나리 강회도, 긴 겨울을 지나고, 계절을 건너뛰어 먹어야 제 맛이 나는가보다. 날을 생각하며 마켓에서 눈에 는 대로 사다가 먹어보지만 추억 속의 그 맛과 향기를 그대로 살리기는 한참 어렵다.
   그래도 마당 한 편에 연하게 자란 부추를 한 어 오이 소박이 속을 박고, 간 생고추를 설킁 갈아서 풋배추 김치를 담갔다. 풋김치가 맛이 들면, 땅에 러두었던 파뿌리가 가늘고 길게 자랐으니, 아다가 물리어 강회를 만들고 초고추장도 들여 봄맛을 살려봐야겠다.

280세대가 사는 이 시니어 단지에 한국 사람이 여섯 세대가 산다. 두 집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연세가 더 드신 세 집은 완전히 은퇴했다. 모두 일찍 미국에 와서 피나게 노력하여 전문직이나 사업으로 성공하고, 일면 조국의 번영에도 일조하고, 유복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다.
질곡의 수난을 겪은 조국의 매듭 많은 근세사. 참담한 망국과 혹독한 식민지, 혼란의 해방, 건국과 비참했던 육이오 전쟁, 그 이후의 분단과 냉전의 세월만 해도 지난했던 세월. 그 각박한 토양에서도 거칠 것 없는 푸른 꿈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험난한 고산 준령을 넘어오신 어른들이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여 2절의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까나’로 끝맺는 학창시절에 불렀던 이은상 작시 현제명 작곡의 ‘봄처녀’. 이 시와 곡은 여기 은퇴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면 누구나 참 오랫만이긴 하겠지만 서두만 떼면 입에서 술술 이어나오는 가사와 곡일테다. 이 곡을 김동명 작시 김동진 작곡의 ‘수선화’와 함께 준비해두어야겠다.
낮에 집에 계신 분들을 불러다가 이곡을 들으면서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고 찬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제일 먼저 찾아온 봄 처녀 수선화를 맞아야겠다.

봄을 제일 먼저 알려준 노오란 수선화가 보이는 가에 모여 앉아 새파란 풋김치와 파 강회로 맑은 새 봄을 맛 봐야겠다. 수선화를 바라보며 그분들의 성공담을 곱씹어 듣는 맛도 한 몫을 톡톡히 하리라.





2018년 3월 12일 월요일

백의 민족

이글은 미주 중앙일보 2018년 2월 19일자 '이 아침에'란에 '동방 무례지국'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백의민족                                                                            


            인터넷을 통해서 지인이 1954년과 1955년 사이에 찍힌 한국의 풍물 사진을 보내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진들을 보았을 게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 흰 옷들만 입고 있네!”

조선의 백성들은 백의민족이었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많이 들었고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사진을 실제로 보고는 정말 많이 놀랐다.
            처음 사진은 소 시장 풍경이었다. 넓은 한 마당 가득 소를 흥정하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영화의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제복을 맟추어 입힌 듯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흰 옷을 입었다. 전에도 그 시절 사진들을 본 적이 있지만 모두 흑백사진들이라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것은 칼라 사진이라 더 뚜렸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사진들에서도 어린이와 젊은이, 군인들은 유색옷을 입었지만 어른들은 한결같이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아니 흰 옷들만 입고 있었다.
           
이 사진들은 미국에 유학 간 유학생의 아내가 현지에서 영어를 배우던 아담이라는 80대 노 선생님의 집에 초대되면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아담은 당시 의대를 갓 졸업하고  자원봉사로 교회를 통해 한국으로 나갔다그 때에 여러지방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들 속에는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해방동이인 난 그 때의 그 사진 속에서 우유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선 볼이 통통한 단발 머리 소녀였다. 폭격에 무너진 폐허의 잔해 빈터에서 소꼽놀이를 하고 놀았다. 구호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인파속에는 언니와 오빠가 있었고, 쪽 진 머리에 수건을 쓴 여인의 모습은 당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불과 육십 년 전인데 이렇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다니!

그리고보면 한국은 놀랍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음을 자타가 공인하지 않을 수 없다. 몸체가 두 동강이 나고 동족이 서로 적대시하면서 코 앞에 숙적을 두고도 단군 이래 있어본 적이 없는 초유의 번영을 이룩하고, 세계적인 선진국의 대열에 섰음을 생각하면 작은 나라에서 이룩한 성과는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도무지 모르겠는 것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 넘치는 풍요 속에서 왜 그리도 불만이 많고, 한국 사회의 자살율은 높으며, 오늘의 부국을 이룩한 장본인인 노인들은 대책 없이 비참한 빈곤지경에 내몰리게 되었을까?
듣건대, 2003년 이후 13년째 OECD회원국 자살율 1위의 오명을 쓰고 있고,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3.3명으로 국민 평군의 2.1배에 달하며, 불만지수는 OECD 평균의 4배라고 한다
빈한한 가운데서도 칼같이 지켜왔던 예의범절은 다 어디 가고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이제는  ‘동방 무례지국이라 거꾸로 읽어야 할 판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군 이래  최고의 강성부국

경제대국
무역대국
기술대국
과학대국
문화대국

무궁화꽃이 활짝 피었어요

그런데
국민 행복지수는 꼴찌
자살율은 첫째

머리가 배탈이 났을까
배가 두통이 났을까


어찌 보면 부모세대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허리띠를 조여매고 불철주야 앞만 보고 여유가 없이 달려온 때문일게다. 뒤도 돌아보고, 옆도 돌아보고, 위도 올려다 볼 여지가 없이 코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는 동안 과열경쟁속에 내몰렸던 자녀세대는 과보호 아래 풍요를 누리는 데 적합하고 일구는데는 미숙한 연약한 귀동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버겁고 나를 할애하여 예의를 지켜나갈 힘이 딸린다. 그러니 감사할 여유는 도무지 없다. 불만이 쌓이는 이유다.
실업률이 높고 취직자리가 없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은 봉급이 많고 편한 직장을 찾으니까 그렇지 외국인 노동자의 무시못할 상당수가 우리나라에 와서 어렵사리 일하며 공부하는 현실을 보면 일자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자립심과 창의력이 있고 더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면 젊음을 불사를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리라

            빈한해도 나눌줄도 알고 체면을 지키며 예의를 존중했던 그 시절을 한번 찬찬히 되돌아보는 것이 약이 될 수 있을게다. 올챙이적 생각을 해보자는 게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공부가 중요하다. 사관이 바로 서야 방향을 제대로 잡아 망국의 길로 접어들지 않고 확고한 강성부국을 일구어 나갈 수 있을게다.

흰옷 입고 짚신 신고 미덕을 지키며 살아온 백의민족. 그 역사를 철저히 배워서 교훈을 얻고  구악의 고리는 끊어내어 새로운 동방예의지국의 명예를 얻을 수 있다면  배탈도 두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조국에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