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6일 수요일

서리꽃





2019년 6월 26일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에 실린 글입니다  

 난 머리를 염색하지 않았다.

  내 머리칼은 그냥 내 나이에 걸맞게 희다. 내 머리를 두고 여러사람들이 여러모양으로 얘기를 한다. 머리를 염색하면 십년은 젊게 보일거라며 물 들일 것을 적극 권한다. 그럴 때는 나를 위해서 해주는 조언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좀 더 단정할 수 있는데 게으르다거나 너무 무심하다는 약간의 비난조가 깔려있는 말은 아닐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기를 너무 잘했다고 한다. 자기는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어 계속하지만 너무나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고 나보고 절대로 시작하지말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한다. 자기는 머리를 염색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뿌리에서부터 하얗게 자라 올라오는 것이 너무나 얄밉기까지 하다고 진저리를 친다.
   때로는, 내머리 정도면 자기는 절대로 염색을 하지 않을거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는 일찍 머리가 희어져서 흰머리가 너무 많으니 염색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기는 요즘은 얼굴이 팽팽하고 자세가 꼿꼿한 노인같지 않은 노인이 많다보니 오히려 흰머리가 더 어색한 사람도 많다.
   그런가 하면 주름진 얼굴이나 구부정한 자세로 봐서 나보다 한참은 연배일 것 같은 파파 노인이 머리를 새까맣게 혹은 빨갛게  염색해서 보글보글하면 난 희끝한 머리를 하고 그 앞에 서기가 오히려 좀 면구스럽기도 하다.

   어떤 자리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같이 서리를 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어르신이라 칭할때가 있다. 어르신이란 칭호는 늘 들을 때마다 내게는 생소하고 참 낯설다. 그럴 때, 과연 내가 어르신스러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만 결론은 언제나 정말로 자신이 없다.
   어르신스러우려면 우선 품도 넓고, 지혜도 많고, 인생을 어느정도 달관한 경지에 도달하여 좀처럼 희비를 드러내지 않는 원숙함과 초연함이 있어야 하리라. 그런데 난 아직도 치기어린 호기심이 있어 때늦은 후회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철딱서니 허영심도 있어 스스로 주책없다고 자책하고 자제하는 때도 많다. 감추고싶은 연약한 점도 많고, 여태 놓지 못하는 허망한 꿈도 있다. 작은 일을 붙들고 걱정도 많이 하고, 툭하면 삐치고 성내며 눈물까지 찔끔 짜는 푼수다. 
   어르신이란 칭호보다는 '어리신'이라 불리워야 마땅할 정도다.
   그럼에도 세월은 철딱서니 나에게 서리꽃을 달아주었다. 어르신스러워서 서리꽃을 달아준 것이 아니고 서리꽃을 달았으니 이제는 좀 어르신스러워보라고.

   세월을 야멸차다고 입이 삐뚤어지게 원망하다가도 미안해서 돌이켜 그만둔다. 세월에게 진 빚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나이 살아있도록 시간도 기회도 충분히 주었건만 다 놓치고 허비했으니 할 말이 없고 염치가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내 머리에 얹힌 서리꽃은 자랑할 것도 없지만 수치도 아니니 누가 뭐라 하든 난 염색을 안 하고 그대로 두려고 한다. 그냥 세월의 다정한 선물로 알리라. 아무나 다 받는 선물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 뒤돌아보면, 못내 안타깝게도 먼저 저세상으로 간 그리운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이 달콤한 복숭아를 맛보지 못한다.

   난 그저 세월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주어지는 나머지 날들을 더욱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