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9일 화요일

못난이


이 글은 2018년 5월 29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생활속에'란에 '그렇게 예쁘게 생기진 않았지만' 이란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사람이 잘 생기고 볼 일이다. ‘겉 볼 양 아니고 속 볼 양’이라 말하지만 외모가 주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특히 여자는 더하다.

   내가 어릴 때 집안에서 불리던 별명은 못난이였다. 계집애가 우선 살결이 검었다. 식구들 중 제일 까만 피부 색갈만으로도 예쁜 축에는 못 들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일부러 일광욕을 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곰보다. 아마 내가 천연두를 앓은 세대의 마지막일게다. 같은 또래의 조카와 내가 한집에서 같이 천연두를 앓았는데 조카는 죽고 나는 살았다. 얼굴의 열꽃이 다 곱게 떨어졌는데 콧등에만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 등에 업힌 아기가 코를 엄마 등에 대고 부볐기 때문에 난 코곰보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은 특히 더했다.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할 지경이었다. 요즘처럼 개성과 실력이 인정받는 시절이 아니었다. 이 커다란 열등감은 늘 나를 튼실한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두었다.  유년시절부터 이 울타리 밖으로는 한 발작도 나가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이 얼마나 불평등한 처사인가?   불상한 지경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어려서부터 성격은 온순했는데 정신적인 발육이 늦었다. 언니들은 나를 못난이 라고 불렀다. 딸로는 다섯째 막내인지라 귀엽다는 표현이 들어간 별명이었겠지만 아무튼 학교에서 오줌을 싸고 오지를 않나, 학교 성적은 꼴찌에다 못난 짓은 골라가며 했던것 같다.

    어느듯, 세월이 골짜기와 등성을 오르내리며 강물처럼 흘러 사랑은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그리움은 안개처럼 밀려오는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게 예쁘게 생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만일 내세에 다시 여자로 태어나기로 정해졌다면 이왕이면 예쁘게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엄청 예쁘게 생겨서 내게 돌아오는 넘치는 분복을 감내할 지력이 내게 없었을거라는 자각이다. ‘네 은혜가 그로 족하다’라는 말씀을 깨우친 덕분에 외모로 자만하지 않았으니, 남편의 사랑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길 수 있었다.

    얼마전 남성 문우 한 분이 내가 아는 여성 인사의 인물평을 하면서 그 분을 처음 봤을 때에 어찌 그리 못생겼는지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내 마음 한 쪽이  아파지는 것을 경험했다. 동병상련이다. 보편적으로 남성들은 여성이 예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야말로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건 내죄가 아냐!’ 라고 소리쳐 항변하고 싶어진다.
그 여성인사야 말로 오목조목 예쁘게 생긴 미인형은 아니지만 키도 크고, 살결도 희고 목소리도 또렷하고, 세련된 멋쟁이라서 언뜻 보아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난 그녀를 보며 그의 다재다능한 재주를 부러워하고 그의 기발한 재치와 확고한 자긍심과 너그러운 덕성에 부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그녀에 대한 특징적 이미지는 얼굴에 있지 않다. 그래서 부언하여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자들을 남성의 상대적인 여성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이기 이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먼저 봐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잘 생겨서 좋은 것은 여자만이 아니다. 남자도 요즘은 화장도 하고 악세서리도 하여 어떤 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별이 안가는 경우가 생기는 세태다.  특히 남자는 체격에 예민하기 쉽다. 키가 작으면서 자긍심이 강하고 품격이 큰 사람들은 등소평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본다. 그것이 큰 장애가 되지 않음을 보는 일은 즐겁다.
누구든지 예뻐지고싶은 사람이 없을까마는 어떤 이는 사활을 건 것처럼 위험한 시술을 그것도 몇번씩 받는 경우를 본다. 이는 불쌍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때론 손 대지 않은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하기는 평생 예쁘다는 말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온 나지만, 머리에 서리를 하얗게 이고서도 혹 누가 곱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하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인사치례인 줄 알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마는 난 하릴없는 못난이다. 

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우리 가락과의 조우


이 글은 4/27/2018 '미주 중앙일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첫손자가 첫돌을 맞았다. 산호세에 살고 있는 아들네를 가려면 자동차로 편도 다섯 시간이 걸린다. Fwy 5는 경치가 비교적 단조로운지라 집을 떠나면서 오가며 들을 음악과 설교 테이프를 챙기다가 옛날에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두었던 민요 모음집을 가져갔다.
   갈때에는 남편에게 민요를 듣겠느냐고 물으면 자꾸 나중에 듣자고 해서 미루다가 올 때에서야 민요를 틀었다. “정선 아리랑 먼저 틀어봐” 여러곡을 다 듣지는 않겠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CD 두 개에 들어있는 스물일곱 곡을 다 듣고도 정선 아리랑은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구비치는, 골자기를 휘돌아서...’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갔다가, 칭칭 늘어진 능수나 봄버들이 제멋에 겨워 흥흥대는 천안 삼거리로 갔다.‘봄버들에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지금의 노량진, 노들나루에서 만고풍상 비바람에 씼겨진 빛나는 흰 모래를 밟아보고, 장산곶 마루에서는 임도 만나 보았다. 경치 좋은 잣나무 그늘에서 울산 아가씨를 만나 실백자 얹은 전복쌈도 먹었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라는 밀양으로 돌다보니 종횡무진 날개 달린 발걸음엔 절로 신이 났다. 나는 얼마 전에 배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세마치와 굿거리 장단으로 무릎을 쳤고 남편은 간간히 “얼쑤우”, “조오타”를 신명나게 곁들였다.

   어느 날 나는 신나게 드럼 치는 공연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 저렇게 신명나게 드럼을 두들겨봤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난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음악을 좋아는 했지만 일인 오역의 삶을 살아내느라 음악과 별로 친숙하지 못하며 살아왔고, 더구나 드럼과 관계있는 젊은 음악이야말로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동네 신문에 난 국악 학원 광고에 내 눈이 머물고 드럼대신 장구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던 오십년대나 육십년대 시절에는 세간에서 국악을 좀 무시하던 때였다. 나는 자연스레 국악에 대해 무식했다. 그래서  서너 달만 배우면 장구를 꽤 칠 수 있으리라 가볍게 생각했다.
   장구를 대하고 앉으면 왼쪽은 궁편, 오른쪽은 열편이다. 왼쪽을 치는 궁채와 오른쪽을 때리는 열채를 장단에 맞추어 가장 간단하고 느린 장단인 세마치부터 배웠다. 그 다음 굿거리,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 단모리로 점점 빠르고 복잡한 장단으로 나간다. 세마치장단은 사분의 삼박자로 옛날 악보가 없이 입소리로 구전되던 구음으로 하면 ‘덩 떵따 쿵따, 덩 덩따 쿵따, 덩 덩 따, 덩 덩따 쿵따’이다. 쿵은 궁채 소리, 따는 열채 소리, 덩은 열채와 궁채를 같이 치는 소리다. 네 마디 한 소절 중에 셋째마디는 변조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간단한 삼박자를 치는 것도 강약을 조절하고 타점을 정확히 때려가면서 장단이 몸에 배일 때까지는 반복연습이 꽤 필요했다. 조금 알고 보니 한국음악의 장단이 서양음악의 장단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조가 많아 익히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드럼은 삼 개월을 열심히 배우면 어느 정도 칠 수 있다는데 장구는 삼년을 배워도 어느 경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용도 그랬다. 서양 춤은 힘 있는 직선이 강조되고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중심을 잡는데 고전무용은 발뒤꿈치에 중심을 두고 되도록 땅에 붙인다. 특히 우리 고전은 부드럽게 흐르는 선이 정(靜), 중(重), 동(動)을 따라 유연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보기에는 참 쉬워 보이나 그 맛을 먼저 알기 전에는 흉내 내어 배우기가 꽤 힘들었다.
  
    탁발승이 집집이 시주를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탁발승이 대문 앞에 와서 염불을 하니까 어린 내가 얼른 쌀독에서 쌀을 담아내오니 마루에서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돗보기 너머로 눈짓을 하며 잠시 중지하라는 손짓을 하셨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한참을 서 있었는데 나중에야 알아챘다. 그 탁발승이 부르는 회심곡의 청이 좋아서 어머니께서 듣기 좋으셨던 것. 라디오도 없던 시절의 얘기다.
   잠시의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어설프나마 조금 맛을 들였더니 내가 직접 표현해내지는 못해도 국악을 들으면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에 묵은 체증이 봄바람에 얼음 녹듯 풀어지는 후련한 느낌을 맛본다.       
   서양음악에 없는 엇박자나 토속적인 창법에서 가슴속에 눌어붙은 향수의 앙금을 긁어내는 시원함과 한국 서정의 진솔한  멋을 느낀다. 무엇이든지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가까이 하면 알게 되며 즐긴다는 것은 아는 것과 비례하니까 아는 깊이만큼 즐거움도 커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가락과 조우하면서 볼거리가 없는 밋밋한  Fwy 5를 지루한 줄 모르고 다녀왔다.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돼지고기 로스와 쌈장 (Pork steak, Bean Paste for Lettuce Wrap)



오늘 Costco에 다녀왔습니다. 
고기는 세일을 잘 하지 않는데 드물게도 오늘은 돼지고기가 세일입니다. 4.5파운드에 12불이 되는 팩키지를 4불이나 되돌려 받았어요.

우선 가장자리 기름을 정성스레  떼어내고 돼지불고기감으로 조금 두껍게 썰어서 한번 먹을 분량으로 랩에 쌌더니 다섯 팩이나 되었습니다. 



가장자리는 채를 썰어서 짬뽕을 만들때 넣으려고 작은 팩을 만들었더니 4팩이 되었어요.
결국 8불로 돼지불고기를 다섯번 그리고 짬뽕을 네번 할수 있게 되었으니 가히 횡재를 했다고 해야겠습니다. 요즘같이 쌀쌀한 날씨에는 짬뽕을 만들면 따끈하고 얼큰해서 몸 풀기 안성마춤이죠.

돼지고기 채는 짬뽕말고도 고추잡채, 부추잡채같은 각종 잡채, 된장찌게, 김치찌게 등 아무곳에라도 넣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미리 썰어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꼭꼭 싸서 갈무리면 나중에 따로 도마를 버리지 않아서 설겆이를 줄이니 좋지요.

고기 부위는 Top sirloin인데 가장자리 기름을 떼어낸 것이 약 반 파운드 정도나 되었습니다.
보기에는 가운데는 살만 있고 기름은 가장자리로 얇게 둘러 있어서 기름이 적어보였는데 떼어서 모아놓고 보니 상당히 많네요. 만일 이것을 그냥 다 먹었다면 몽땅 뱃살에 붙어서 내 똥배가 저만큼 더 커졌겠지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저녁에는 불고기 감 중에서 얇은 것을 골라  요리주에 삼십분 정도 재었다가 양념을 하지 않은 그대로 식탁에서 직접 로스로 구웠습니다.  요리주에 재었기 때문에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고 기름도 없어 담백하고 연해서 냠냠 배가 부를 때까지 먹어도 질리지 않고 맛이 좋았습니다.
남편은 체중을 감량한다고 밥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고 감자볶음과 양파 볶음, 
상추와 고기만으로 저녁을 끝냈습니다.

마침 김치가 적당히 익었고, 또 어제 상추를 사왔고, 제일 중요한 맛된장을 볶아두었으니 딱 제격이지요.

쌈장 볶음

된장을 볶아두고 여러 용도로 사용하면 맛도 있고 편리합니다.
상추가 있을 때 쌈장은 물론이고,  오이나 풋고추가 있을 때 찍어 먹기도 하고, 돼지고기 수육이나 로스에 소금 후추 대신 발라서 먹기도 하고,  야채의 어린 싹들을 밥에 비벼먹을 때도 좋습니다.
또 된장찌게를 끓일 때에 이걸 쓰면 시간이 반으로 줄면서 맛도 훨씬 좋습니다.
또있다! 봄동배추나 어린 무청을 삶아 무쳐도 쉽게 맛있는 나물반찬이 됩니다.

양파를 잘게 썰어서 팬에 넣고 물을 조금 붓고 색이 투명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볶습니다. 
그리고  소고기나 돼지고기 잘게 썬 것과요리 주, 마늘을 넣고 고기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볶아줍니다. 
고기를 넣지 않으려면 멸치를 잘게 부수던지 가루로 만들어 넣어도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꽁치를 구워서 살을 발려 넣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봤습니다.
여기에 된장, 고추장, 고추 가루를 원하는 비율로 넣고 섞으면서 볶습니다.
너무 되면 물을 조금 섞고. 혹시 너무 묽으면 들깨 가루나 아마씨 가루 같은 마른가루를 조금만 넣어도 금방 물기가 가시고 되어집니다.



마지막에 참기름을 넣어도 좋지만 나는 여러 용도로 쓰려고 넣지 않았어요.
참기름은 그때 그때 용도에 따라서 즉석에서 넣어 씁니다.



냄새나 간을 희석하려면 일본된장을 섞으면 좋고, 
쌈장으로 쓸때는 참기름과 함께  잣이나 호두를 한 줌 넣으면 씹히는 맛이 좋습니다. 







2018년 3월 31일 토요일

Antelope Valley Poppy

이 글은 2018년 3월 31일자 미주 중앙일보 오피니언 란에  "파피동산을 만든 한  여성의 집념' 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금잔의 축제

                                
   올봄에는 늦은 비가 많이 왔으니 필경 엔틸롭 밸리(Antelope Valley)엔 파피꽃이 많이 필 게다.
   파피꽃 나들이에 남편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두 번이나 내가 우겨서 갔었는데 한 번은 서울서 온 손님까지 데리고 갔었다. 아무 볼거리가 없는 황량한 벌판과 낮은 구릉에 파피가 많이 있기는 했지만 먼 길을 달려가 구경할 만한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게다가 날아갈 듯 찬  바람이 불어 품속으로 파고들고 바람에 섞인 흙먼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결국 고집스럽게 우기던 내 입장만 미안하고 난처해졌었다. 싱겁게 그냥 돌아올 수 없어 차에서 내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로 잔뜩 움츠리고서 찡그린 채 찍힌 사진조차 영 볼품이 없었다.
삼사년 후에 난 또 남편을 졸라서 파피를 보러갔는데 세번째는 정말 많은 파피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십여 마일 전부터 아지랑이 핀 먼 산이 주홍색 거대한 담요를 덮어 놓은 듯 붉게 보였다. 물 주어 가꾼 정원의 꽃이 아니다. 사막성 기후의 초원과 야산의 마른 땅에 야생으로 핀 꽃이다. 차에서 내려서니 눈이 닿는 온 땅이 주홍색 물결로 넘실댔다. 파피꽃이 밝은 봄볕 아래 얼굴을 반짝 들고 웃음을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니 솟구치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왔다. 절로 나비가 된 듯 온 들을 마구 쏘다니며 사진도 찍고 노래도 부르며 꽃밭을 누볐다. 집에 돌아와서 찍어온 사진들을 보니 활짝 핀 파피꽃 사진들도 물론 아름다웠거니와 꽃물 흠씬 든 인물사진들도 하나같이 예뻤다.

   파피의 또 다른 이름은 Copa de Ora (Cup of Gold). 이름과 같이 종지모양을 하고 있다. 파피는 코스모스와 같이 꽃대와 잎이 가늘다. 그래서 여린 꽃대가 활짝 핀 화려한 꽃을 받쳐 들고 작은 바람에도 간들거리는 모습이 가녀린 소녀의 화사한 미소를 보는 듯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무리진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는 작은 종들의 합주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이 꽃은 낮에 피었던 꽃이라도 밤에는 꽃잎을 오므린다. 낮에도 해가 구름에 가리거나 기온이 차면 꽃이 오므라들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전에 갔을 때도 제철이었지만 그날의 날씨 때문에 잘 보지 못한 거였다.
1903년에  캘리포니아의 주화로 정해진 파피는 다년생 식물로 거의가 밝은 노랑색이 아니면 붉은 주홍색이다. 그러나 간혹 흰 꽃도 있고 보라색이나 섞인 색의 꽃이 있다지만 드물다. 키는 6인치정도이고 커봐야 18인치 정도로 키가 작다.
   십오 마일에 걸친 1800 에이커의 광활한 야생 파피꽃 단지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Antelope Valley에 살았던 Jane Pinheiro(1907-1978)라는 한 여성의 꿈을 향한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1942년 코로라도 덴버에서 이주해온 그녀는 그림을 공부한 사람이 아님에도 자연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그 지역의 야생화와 동물들의 소상한 그림들도 많이 남겼다.
   아무 특징도 없는 메마르고 광활한 볼 품 없는 사막, 지금도 인가가 거의 없고 점심을 먹을 변변한 햄버거 가게조차 없는 곳인 걸 생각하면 짐작컨데, 단조로운 일생을 살았을 Jane Pinheiro가 자기의 꿈을 처음부터 이렇게 굉장한 설계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한 여인의 소박한 꿈이 성실의 방석에 앉아 미풍의 마차를 타니 손끝에서 떨어진 한 줌의 씨앗이 광활한 산과 들을 온통 피피로 물들였다. 금종을 울려 만인을 부르고 금잔의 축제에 초대된 손님들은 홀연히 나비가 되어 꽃바람 타고 꽃물결 위를 흥에 겨워 날며 노니는 오늘이 되었다. 

   한 사람의 노력으로 두고두고 오는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으니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지금도 눈을 감으니 봄의 햇살을 가득 담은 금잔을 높이 들고 축제의 노래를 부르는 파피들의 화사한 모습이 눈에 선하고 언덕 위를 넘쳐흐르는 금종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 

·Park Information   http://www.parks.ca.gov/?page_id=627

  • HOURS OF OPERATION:  Park Hours:    Sunrise to Sunset.
  • PARK OFFICE TELEPHONE:  (661) 946-6092
  • REGION - Los Angeles County
    COUNTY -  Los Angeles

Location - Directions

The Reserve is located 15 miles west of Lancaster at 15101 Lancaster Road.
From Highway 14:  Take the Avenue I exit and head west 15 miles.  Avenue I becomes Lancaster Road.
From I-5:  Take Hwy 138 east and turn right on 170th Street West.  Make a left at the end, onto Lancaster Road.  Follow the road two miles.
Latitude/Longitude: 34.72482 N, 118.41271 W

2018년 3월 14일 수요일

수선화와 봄맛

이 글은 2018년 3월 10일자 중앙일보 '이 아침에' 난에 '추억이 싹트는 봄날'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입니다.





   어머! 언제 이렇게 자라올라 꽃을 피웠지? 며칠 따뜻하더니 변덕스레 찬 바람이 불고 추워졌었다. 며칠동안 밖을 내다보지 않다가 오늘 보니 어느새 한 뼘이나 자란 수선화가 청초한 노란 꽃을 활짝 피우고는 다소곳이 봄을 안고 웃고 있다.
   각 나라의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엘에이는 음식도 다양해서 동 서양 육대주의 과일과 음식이 철을 가리지 않고 거의 다 있어 입맛대로 나라별로 돌아가며 찾아 먹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상한 것은 젊은 날에 뇌리에 각인된 보잘것 없을 것 같은 고향의 옛 음식들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한국에 살 때는 긴 겨울을 대비하려면 먹거리 준비가 상당했다. 김장을 담그면 기본적으로 포기김치, 막김치, 백김치, 깍두기, 동치미외에도 보쌈김치, 갓김치, 종류별로 열심히도 담갔다. 마른 나물들도 무말랭이 호박 고자리, 가지, 고춧잎, 시래기를 고루 갖추어 마련해 두었었다. 초여름부터 장만한 마늘종, 깻잎, 부추, 풋고추, 무우, 오이, 등을 장과 젓갈에 장아찌를 담가서 때마다 다양한 부식을 꺼내 먹으며 겨울을 났었다. 살림을 제대로 하는 주부라면 이런 정도는 어느 집이나 기본으로 다 갖추어두고 먹었다.
   지금 이것을 이렇게 열거하다보니 내가 그렇게 하던 장본인인데도 엄청나서 어떻게 그렇게 했을까 기가 찰 정도로 멀고 까마득한 얘기로 느껴진다.
     냉이국, 취나물, 두릅나물, 달래 된장찌개, 미나리 강회도, 긴 겨울을 지나고, 계절을 건너뛰어 먹어야 제 맛이 나는가보다. 옛날을 생각하며 마켓에서 눈에 띄는 대로 사다가 먹어보지만 추억 속의 그 맛과 향기를 그대로 살리기는 한참 어렵다.
   그래도 마당 한 편에 연하게 자란 부추를 한 줌 뜯어 오이 소박이 속을 박고, 빨간 생고추를 설킁 갈아서 풋배추 김치를 담갔다. 풋김치가 맛이 들면, 땅에 꾹 꾹 찔러두었던 파뿌리가 가늘고 길게 자랐으니, 뽑아다가 잣 물리어 강회를 만들고 초고추장도 곁들여 봄맛을 살려봐야겠다.

280세대가 사는 이 시니어 단지에 한국 사람이 여섯 세대가 산다. 두 집은 아직 직장에 다니고 연세가 더 드신 세 집은 완전히 은퇴했다. 모두 일찍 미국에 와서 피나게 노력하여 전문직이나 사업으로 성공하고, 일면 조국의 번영에도 일조하고, 유복한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다.
질곡의 수난을 겪은 조국의 매듭 많은 근세사. 참담한 망국과 혹독한 식민지, 혼란의 해방, 건국과 비참했던 육이오 전쟁, 그 이후의 분단과 냉전의 세월만 해도 지난했던 세월. 그 각박한 토양에서도 거칠 것 없는 푸른 꿈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험난한 고산 준령을 넘어오신 어른들이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시작하여 2절의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까나’로 끝맺는 학창시절에 불렀던 이은상 작시 현제명 작곡의 ‘봄처녀’. 이 시와 곡은 여기 은퇴 마을에 사시는 분들이면 누구나 참 오랫만이긴 하겠지만 서두만 떼면 입에서 술술 이어나오는 가사와 곡일테다. 이 곡을 김동명 작시 김동진 작곡의 ‘수선화’와 함께 준비해두어야겠다.
낮에 집에 계신 분들을 불러다가 이곡을 들으면서 부칠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고 찬바람과 추위를 이기고 제일 먼저 찾아온 봄 처녀 수선화를 맞아야겠다.

봄을 제일 먼저 알려준 노오란 수선화가 보이는 창가에 모여 앉아 새파란 풋김치와 파 강회로 맑은 새 봄을 맛 봐야겠다. 수선화를 바라보며 그분들의 성공담을 곱씹어 듣는 맛도 한 몫을 톡톡히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