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5월 29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생활속에'란에 '그렇게 예쁘게 생기진 않았지만' 이란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사람이 잘 생기고 볼 일이다. ‘겉 볼 양 아니고 속 볼 양’이라 말하지만 외모가 주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하다.
특히 여자는 더하다.
내가 어릴 때 집안에서 불리던 별명은 못난이였다.
계집애가 우선 살결이 검었다. 식구들 중 제일 까만 피부 색갈만으로도 예쁜 축에는
못 들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일부러 일광욕을 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아 곰보다. 아마 내가 천연두를 앓은 세대의 마지막일게다.
같은 또래의 조카와 내가 한집에서 같이 천연두를 앓았는데 조카는 죽고 나는 살았다. 얼굴의 열꽃이 다 곱게 떨어졌는데 콧등에만 딱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 등에 업힌 아기가 코를 엄마 등에 대고 부볐기 때문에 난 코곰보가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은 특히 더했다.
여자가 예쁘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할 지경이었다. 요즘처럼 개성과 실력이
인정받는 시절이 아니었다. 이 커다란 열등감은 늘 나를 튼실한 울타리 안에 꽁꽁 가두었다. 유년시절부터 이 울타리 밖으로는 한 발작도 나가보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 이 얼마나 불평등한 처사인가? 불상한 지경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어려서부터 성격은 온순했는데 정신적인 발육이
늦었다. 언니들은 나를 못난이 라고 불렀다. 딸로는 다섯째 막내인지라 귀엽다는 표현이 들어간 별명이었겠지만 아무튼 학교에서 오줌을 싸고 오지를 않나, 학교 성적은 꼴찌에다 못난 짓은 골라가며 했던것 같다.
어느듯, 세월이 골짜기와 등성을 오르내리며 강물처럼 흘러 사랑은 물결처럼 퍼져나가고 그리움은
안개처럼 밀려오는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그렇게 예쁘게 생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만일 내세에 다시 여자로 태어나기로 정해졌다면 이왕이면 예쁘게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엄청 예쁘게
생겨서 내게 돌아오는 넘치는 분복을 감내할 지력이 내게 없었을거라는 자각이다. ‘네 은혜가 그로 족하다’라는 말씀을 깨우친 덕분에 외모로 자만하지 않았으니, 남편의 사랑을 소중하고 감사히 여길 수
있었다.
얼마전 남성 문우 한 분이 내가 아는 여성 인사의 인물평을 하면서 그 분을 처음 봤을 때에 어찌 그리 못생겼는지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내
마음 한 쪽이 아파지는 것을 경험했다.
동병상련이다. 보편적으로 남성들은 여성이 예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야말로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건 내죄가 아냐!’ 라고 소리쳐 항변하고 싶어진다.
그 여성인사야 말로 오목조목 예쁘게 생긴 미인형은
아니지만 키도 크고, 살결도 희고 목소리도 또렷하고,
세련된 멋쟁이라서 언뜻 보아도 존재감이 뚜렷했다. 난 그녀를 보며 그의 다재다능한
재주를 부러워하고 그의 기발한 재치와 확고한 자긍심과 너그러운 덕성에 부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그녀에 대한 특징적 이미지는 얼굴에 있지 않다. 그래서 부언하여 남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여자들을 남성의
상대적인 여성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이기 이전에 똑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먼저 봐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잘 생겨서 좋은 것은 여자만이 아니다. 남자도 요즘은 화장도 하고 악세서리도 하여 어떤 때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별이 안가는 경우가 생기는 세태다. 특히 남자는 체격에 예민하기 쉽다. 키가 작으면서 자긍심이 강하고 품격이 큰 사람들은 등소평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거론하지 않아도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본다.
그것이 큰 장애가 되지 않음을 보는 일은 즐겁다.
누구든지 예뻐지고싶은 사람이 없을까마는 어떤 이는
사활을 건 것처럼 위험한 시술을 그것도 몇번씩 받는 경우를 본다. 이는 불쌍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때론 손 대지 않은것보다 더 못한 결과를 초래하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하기는 평생 예쁘다는 말을 기대하지 않고 살아온 나지만,
머리에 서리를 하얗게 이고서도 혹 누가 곱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하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인사치례인 줄 알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마는 난 하릴없는 못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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