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우리 가락과의 조우


이 글은 4/27/2018 '미주 중앙일보'에 실렸던 글입니다.  





   첫손자가 첫돌을 맞았다. 산호세에 살고 있는 아들네를 가려면 자동차로 편도 다섯 시간이 걸린다. Fwy 5는 경치가 비교적 단조로운지라 집을 나면서 오가며 들을 음악과 설교 테이프를 기다가 옛날에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포장을 지도 않은 채 두었던 민요 모음집 가져갔다.
   갈때에는 남편에게 민요를 듣겠느냐고 물으면 자꾸 나중에 듣자고 해서 미루다가 올 때에서야 민요를 틀었다. 정선 아리랑 먼저 틀어봐 여러곡을 다 듣지는 않겠다는 표현이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CD 두 개에 들어있는 스물일곱 을 다 고도 정선 아리랑은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구비치는, 골자기를 휘돌아서...’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 정선으로 갔다가, 칭칭 늘어진 능수나 봄버들이 제멋에 겨워 흥흥대는 천안 삼거리로 갔다.‘봄버들에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지금의 노량진, 노들나루에서 만고풍상 비바람에 씼겨진 빛나는 흰 모래를 밟아보고, 장산곶 마루에서는 임도 만나 보았다. 경치 좋은 잣나무 그늘에서 울산 아가씨를 만나 실백자 얹은 전복쌈도 먹었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라는 밀양으로 돌다보니 종횡무진 날개 달린 발걸음엔 절로 신이 났다. 나는 얼마 전에 배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세마치와 굿거리 장단으로 무릎을 쳤고 남편은 간간히 얼쑤우, 조오타를 신명나게 곁들였다.

   어느 날 나는 신나게 드럼 치는 공연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 저렇게 신명나게 드럼을 두들겨봤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난 스스로 놀랐다. 음악을 아는 했지만 일인 오역의 을 살아내느라 음악과 별로 친숙하지 못하며 살아왔고, 더구나 드럼과 관계있는 젊은 음악이야말로 더더욱 거리가 었다. 그런데 동네 신문에 난 국악 학원 광고에 내 눈이 머물고 드럼대신 장구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던 오십년대나 육십년대 시절에는 세간에서 국악을 무시하던 때였다. 나는 자연스레 국악에 대해 무식했다. 그래서  서너 달만 배우면 장구를 칠 수 있으리라 가볍게 생각했다.
   장구를 대하고 앉으면 쪽은 궁편, 오른쪽은 열편이다. 왼쪽을 치는 궁채와 오른쪽을 때리는 열채를 장단에 맞추어 가장 간단하고 느린 장단인 세마치부터 배웠다. 그 다음 굿거리,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 단모리로 점점 빠르고 복잡한 장단으로 나간다. 세마치장단은 사분의 삼박자로 날 악보가 없이 입소리로 구전되던 구음으로 하면 따, 덩 덩따 쿵따, 덩 덩 따, 덩 덩따 쿵따이다. 쿵은 궁채 소리, 따는 열채 소리, 덩은 열채와 궁채를 같이 치는 소리다. 네 마디 한 소절 중에 째마디는 변조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간단한 삼박자를 치는 것도 강약을 조절하고 타점을 정확히 때려가면서 장단이 몸에 배일 때까지는 반복연습이 꽤 필요했다. 조금 알고 보니 한국음악의 장단이 서양음악의 장단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조가 많아 히기 들다는 것을 알았다. 드럼은 삼 개월을 열심히 배우면 어느 정도 칠 수 있다는데 장구는 삼년을 배워도 어느 경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용도 그랬다. 서양 은 힘 있는 직선이 강조되고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중심을 잡는데 고전무용은 발뒤꿈치에 중심을 두고 되도록 땅에 인다. 특히 우리 고전은 부드럽게 흐르는 선이 정(靜), 중(重), 동(動)을 따라 유연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보기에는 참 워 보이나 그 을 먼저 알기 전에는 흉내 내어 배우기가 꽤 힘들었다.
  
    탁발승이 집집이 시주를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탁발승이 대문 앞에 와서 염불을 하니까 어린 내가 얼른 쌀독에서 쌀을 담아내오니 마루에서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돗보기 너머로 눈짓을 하며 잠시 중지하라는 손짓을 하셨다. 나는 영문을 몰라 한참을 서 있었는데 나중에야 알아챘다. 그 탁발승이 부르는 회심곡의 청이 좋아서 어머니께서 듣기 좋으셨던 것. 라디오도 던 시절의 얘기다.
   잠시의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어설프나마 조금 맛을 들였더니 내가 직접 표현해내지는 못해도 국악을 들으면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에 은 체증이 바람에 얼음 듯 풀어지는 후련한 느낌을 맛본다.       
   서양음악에 없는 엇박자나 토속적인 창법에서 가슴속에 어붙은 향수의 금을 어내는 시원함과 한국 서정의 진솔한  을 느낀다. 무엇이든지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가까이 하면 알게 되며 긴다는 것은 아는 것과 비례하니까 아는 깊이만큼 즐거움도 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가락과 조우하면서 볼거리가 없는 밋밋한  Fwy 5를 지루한 줄 모르고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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