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문화와 냄새
난 양파 , 파,
마늘 냄새에 특히 예민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진저리나는 냄새 때문에 그것들을 전혀
못 먹는다. 그러니 그 냄새만큼은 보통 사람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난 어려서부터 파를 씹으면 구역질을 했다.
우리 세대는 전쟁 후라 좋고 싫기 이전에 무엇이나 없어서 못 먹던 세대다 .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무심결에 파가 씹히면 즉시로 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고 뛰쳐나갔다. 다섯째 딸에다가
아래 위로 오빠와 남동생이 있어 나는 없어도 좋을 만큼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김치를 꼭 하얀 줄거리만
국물에 씻어 먹어서 할머님께 무수한 핀잔을 들었다. 이상한 것은 형제 중에 유일하게 나만 그렇다.
음식점에서 가니쉬로 얹어준 파를 고르느라 다른 사람이 음식을 벌써 반이나 먹었는데 아직도 세세히 파의 수색전을 펴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하며
내게 파에 대한 엘러지가 있는냐고 묻는다. 그게 아니라 냄새 때문에 못 먹는다고 하면 그냥 씹어서 삼키란다.
아마 엄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본 마추야마로 관광여행을 갔다. 마추야마는 옛날 황실에서도 자주 찾았다는 유서 깊은 온천지다. 일본 전국에서 몰려든 온천 관광객으로
작은 시골 도시가 꽤나 붐볐다. 료칸에 들었는데 넓직한 다다미 방에 채광이 좋아서 쾌적했다.
예우를 갖춘 친절도 감동이었다. 한가지 중요한 불만은 낡은 집이라 온천이 초라하고
옹색했다.
사흘만에 옆호텔로 옮겼더니 온천 시설이 현대적으로 넓고
설비가 좋았다. 그런데 2층 객실에서 참을 수 없이 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와 일본 요리 냄새가 어우러져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창문을 열어놓고 하룻밤을
자고 금연 구역 8층으로 옮겼는데 다소간의 차이가 나기는 했지만 옛날 어머님이 말씀하시던 그 ‘왜내’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전에는 ‘왜내’를 몰랐었으니, 반대로 일본 사람들이 파와 마늘을
많이 먹는 한국사람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견디기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어려우리라는 짐작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교회에 교분이 두터운 부부에게서 언젠가부터 냄새가 많이
났다. 몸에 좋다하여 마늘을 많이 먹는가보다 생각했지만 옆자리에 앉으면 참기 힘들 정도였다.
난 이걸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놀라면서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전혀 수긍하지 않는 눈치였다. 냄새의 특성상 정작 본인은 전혀 알 수가 없는 게 문제다. 자꾸 얘기할 수도 없어 눈치껐 되도록 떨어져 앉았다. 몇 달 후 대화중에 드디어 그 원인을
알아냈다. 방안에서 흑마늘을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2주 정도를 방안에서 숙성하는 동안 온 집안에 마늘냄새가
배고 또 그 흑마늘을 매일 먹었을 터이니 옷과 숨결에서 계속 향을 발할 수 밖에.
나라마다 먹는 음식에 따라 독특한 냄새를 가진다. 남미사람들의 땀내에는 큐민 냄새가 있다.
인도사람들은 카레와 양파냄새, 한국사람과 이태리사람들은 마늘냄새, 일본사람들은 간장과 마른 생선 냄새, 월남사람들은 양파냄새와 휘시소스 냄새를 풍긴다.
이들 향신료들은 음식에 들어가 풍미를 살리고 나도 그 음식들을 아주 잘 먹고 좋아한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그 냄새가 날 때는 좋을 수가 없다.
냄새란 그 물질의 작은 입자다. 문제는 이향신료가 신선한 음식에서 풍길 때는 입맛이 돌고 향기롭지만 공기중에 기름 입자와 함께 흩어져 나와서 사방에 붙고 시일이
경과되면 상하고 변하여 악취가 된다.
토머스 하디의 소설 ‘테스’에는 목장의 젖소가 야생 마늘을 먹어 우유에서 마늘냄새가 나서 이걸 제거하기 위해 온 들을 힘겹게
수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이 알 수 없는 미세하고 정밀한 냄새를 감지하는 예민함이
있다. 나는 한국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때문에 남들은 느끼지 않아도 좋을 참기 힘든 고통을 자주 느낀다.
냄새 공해도 참기 힘든 고역에 속한다. 아무리 콧대 높고 빼어 입은 멋쟁이라도 곁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로 호감은 싹 사라진다. 남편이 혼자서 한식의 양념이 진한 음식을 먹고 들어오면 그 다음날까지
숨결에서 양념냄새가 나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그러니 한국 음식을 먹는 내가 이렇게 고역스럽다면 타인종들은
훨씬 더 강하게 혐오감을 느낄 것이 자명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안 먹을 수는 없다. 허나 다인종이 사는 이곳에서 상대에게 심한 불쾌감을 안겨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심한 냄새
공해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고 문화적인 편견까지 갖게 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꼭 있다.
난 파 종류를 못 먹어 흔치 않은 별종 축에 속하지만 개 코를 능가하는 내 코를 빌어서 한 마디 따듯한 쓴소리로 부질없을
줄 알면서도 오지랖이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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