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7일 금요일

코로나의 질주



2020년 4월 17일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에 실린 글






   코비나 19의 비상령이 내려지기 전내가 소속된 일주일 주기로 모이는 그룹에서 모임의 계속 여부를 논의하는 과정에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평소에 자신감이 넘치는 한 사람이 아니 뭐 그렇게 너무 위축될 필요가 있겠습니까?”고 했다. 이어서 치사율이 그리 높지도 않고 또 인명은 재천인데 뭘 그래요?”라고도 했다. 대부분은 아직 그렇게 깊이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얼른 대답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에 한 사람이  메스컴에서 너무 호들갑스럽게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자 그러면 나올 사람은 나오고 두려운 사람은 나오지 마세요!”라고 누군가 힘주어 잘라 말했다. 모두들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의견을 못 내고 잠시 주춤했다.

   중국과 한국의 상황이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고 이 미국에서도 비상령이 내려지자 갑자기 불안해진 사람들이 사재기의 줄서기를 하고 있다. 상가와 회사, 학교도 문을 닫게 되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위급상황이 아니면 병원의 모든 예약이 취소되었다. 삽시간에 미국 전역에서 감염자가의 속출이 증가되고 날마다 사망자도 늘어났다.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이 금지되었던 권고가 명령으로 바뀌었다.
   나의 친구는 허리 디스크의 급작스런 악화로 거동이 불편하여 겨우 화장실 출입만 하면서 손꼽아 수술날을 기다리다 수술 취소 통보를 받았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고 또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는 지금, 실망이 크고 그 고통과 불편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는 우리가 그룹에서 모임의 계속 여부를 논의하던 시기와 불과 열흘 사이에 일어난 급격한 사태의 변화다.

   지구촌이 한 손바닥 안에 소용돌이 같이 사람들의 이동 속도가 빨라지다보니 상상도 못할 미증유의 초현실적인 일이 이렇게 무서운 속도를 냈다.  생명을 담보하는 일이니 이것은 재난의 한계를 넘어 전쟁이나 진배 없는 상황이다. 개인에게도 칩거명령이 내려졌지만 나라들도 서둘러 문을 걸어 잠글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도 없는 지극히 작은 개체가 온 지구촌을 흔들어대고,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가공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병은 치사율도 무섭지만 전염 속도가 더 무섭다. 그러니 한 발 미리 손을 써서 그 기세를 잡지 않으면 감당이 안 되는 지경이 성큼 다가와 덮치게 되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깔리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이상한 시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들도, 딸도, 손자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살 맛 안 나는 시기다.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이번 사태로 인해 사회 전반에, 다방면에서 변화의 방향이 꺾이는 변곡점이 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겠다. 개인 삶의 자세도 많이 바뀔 것이고, 상권의 형태와 지각이 달라질 것이다. 국제적인 외교문제와 지향점도 변화가 있겠다. 이런 급격한 변화를 인지하고 수용하는 삶을  따라잡지 못하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은 도태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염려되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므로 그에 따른 선택과 결정도 단시간에 내려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충분히 숙고할 시간의 여유가 없다. 마치 내가 나가는 그룹에서 모임의 계속 여부를 논의할 때만 해도 아무도 사태의 심각성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그 후폭풍의 후유증을 어렴풋이나마 짐작도 못했던 것과 같다.

   코로나의 질주가 아무리 빨라도 사람의 지혜를 능가하지는 못하리라. 그동안 감사를 모르고 누리던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묵상하자. 밖으로 뻗던 에너지를 안으로 향하여 내실을 다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저 조용히 느긋하게 성찰의 시간을 갖다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2020년 2월 9일 일요일

영화 '기생충'에 박수를




2020년 1월 28일자 중앙일보 '이 아침에'에 실린 글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골든 글러브상을 거머쥔 떠들썩한 뉴스에다 몸서리 쳐지는 제목이 호기심을 불렀다.
  
 한국의 세 가정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국지적인 이야기지만 빈부의 격차를 주제로 삼고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그림으로 세계적인 논제에 부응하여 각광을 받았다.
    재미를 더하는 것은 대비 설정이다. 부자의 집은 길에서도 더 높은 지대에 있고 창문으로는 탁 트인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내려다 보인다. 빈자의 집은 땅에서도 더 내려간 반 지하방에다 창문으로는 빈민가의 추한  취객의 용변을 올려다 보아야한다. 지하방에 변기를 높이 설치한 그 치밀하고 기발한 발상에 무릎을 치게 한다.
   
   영화는 평범하게 흐르다가 전혀 예상치 못하는 급물살을 타고 상상 밖의 급커브를 하면서 관람자를 꼼짝못하게 붙들고 끌고 가다가 어이없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절정을 이룬다.  다분히 정밀하게 계산된 의도다.
   왜 평소에 너그럽고 후덕한 사장이 주인공 기택의 손에 피살되었을까? 사장은 나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평소에 사장에게 감사하던 기택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이유를 영화는 암시적으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사장과 기사인 기택의 신분은 예와 도를  잘 지킴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물리적이면서도 이 예와 도를 넘어가는 막을 수 없는 것이 냄새였다. 기택의 가족 모두에게서 나는 공통된 냄새는 거짓말이나 위선의 노력으로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장네 집에서 양주 파티를 벌이면서 흐드러진 환각의 기쁨을 누리던 기택의 가족은  사장의 가족이 큰 비로 캠핑을 취소하고 돌아온다는 전화를 받는다. 기택의  가족은  이 불벼락 통보에 혼비백산 현실로 돌아오는데 기택 처의 말대로 바퀴벌레를 방불케 하는 비 인간적인 모멸감을 감수하게 된다. 
   사장의 집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기택의 집으로 오는 길은 빈부의 멀고도 먼 격차를 표현하듯 긴 계단의 내리막을 처절하게 비를 맞으며  내려오고 또 내려와야 한다. 잠시의 환각에서 현실로 돌아와야하는 그 거리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돌아온 낮은  지역의 반 지하방은 홍수로 물이 차고 변기에서는 검은 물이 역류되어 솟아난다. 이 난국을 헤치며 기택은 분출할 명분도 대상도 없는 빈곤에 대한 분노가 고였을 것이다.
   영화의 절정은 얽히고 설킨 살인 현장에서 피에 광분한 기택은 사장이 냄새를 엮겨워하는 모습에 분노의 분출을 사장에게 겨누어 충동적인 살인을 한다.

   실제로 기생충은 숙주에게 빌붙어 영양을 빨아먹지만 숙주가 죽으면 같이 죽기 때문에 숙주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또 기생충끼리도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고 한다. 미물이지만 철저히 공생의 도를 지키는 거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폐단으로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는 현상이다. 거기다가 인터넷의 소통으로 세계는 더욱 가까이에서 격차를 목격하고 실감나게 느끼게 된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우선되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두 기생충 가족의 빈곤에 대한 허무맹랑한 분노와 대립이 불러온 참사를 그린 영화다. 영화 속에서 가정부의 남편은 숨겨진 지하실에서 기거하는 기생충 삶을 좋아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몸서리 쳐지는 장면이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기택도 결국은 그 지하실로 숨어들어 기생충의 삶을 살게된다.
   이 영화는 겉으로 빈부의 격차를 그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유라는 말 속에는 책임과 의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확실한 의미를 못 깨우친 오늘날 교육의 부재를 더 뼈 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고 한류에 더 튼실한 실력과 저력을 보여준 일은 우리 모두를 어깨가 으쓱하게 만들어주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뚫고 국제적인 큰  상으로 인정을 받았으니 놀라운 비범함에 박수를 보낸다. 



2020년 1월 7일 화요일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1010년 1월 7일 미주 중앙일보 '열린 광장'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요한 기관인 심장과 허파가 튼한 갈비뼈로 잘 보호 받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또 있다. 이는 형체가 없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들어있양심이다.
내 생각으로는 양심은 어날 때 갖고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누구나 분명히 갖고 있다. 자라가면서 제라고 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 속 아주 중요한 자리를 기 전까지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양심을 나침판으로 들고 자신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직 을 모르던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섯 살 쯤이라고 생각된다. 서랍에서 큰 돈을 내 대로 가져다가 구멍가게에 가서 마음껏 썼다. 기껏 사탕이나 과자 정도였지만 나도 원 없이 실컷 었을 아니라 동생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신바나게 후한 인심까지 쓰고는 거스름돈 간수를 제대로 못하여 들통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각나기 전에는 양심의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때에 나의 큰 언니가 나를 붙들고 오랫동안 달래고 회유시켜서 자초지종을 캐내었다. 지금 그 전말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열네 살 위의 큰 언니와 씨름하던 기억은 생생하다.
   길 건너 맞은편에는 홍난파 선생께서 지으시고 사시던 붉은 돌로 지은 전망이 좋은 이층 양옥의 저택이 있었다. 큰 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정원이 려 있었다. 벽돌 기둥을 세운 철대문 에는 콘크리트가 되어있고 파이프로 난간을 둘렀었는데 여기가 조무래기 또래들의 사랑 받는 놀이장소였다.
   동무들과 공놀이를 할 때 바닥에서는 공이 이리저리로 는데 이곳 반반한 시멘트 바닥은 여자 아이들이 공을 튕기며 놀기에 좋았다. 여름에는 여기가 그늘도 좋아서 서늘한 나무 에서 공기놀이도 하고 또 쇠 파이프에 대롱대롱 달려 홀딱 집기도 하며 놀았다. 길게 벽돌담을 따라가면 반대편에 고 가파른 층계가 있고 그곳에 작은 문이 있었다. 언니와 나는 호젓이 이 층계 마주 아 대결을 벌였다.
   지금도 어제 일인 듯 생각난다. 온 세상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노을이 그때 처음으로 내 어린 눈으로 들어왔다. 마주 앉은 언니의 얼굴은 노을빛을 받아 말할 수 없이 예뻣다. 우리는 온 하늘에 져있던 황홀한 붉은 기운이 다 스러지고 른 회색의 어두운 기운이 우리를 감싸 조여 올 때까지 실랑이를 했다.
   언니는 소에 없던 따뜻하고 달콤한 말로 나를 회유시켰고 나는 내 의지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죽자고 버티었다. 나의 양심이 깨어나서 괴롭기 시작하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편을 생각해 것이 거짓말이었다. 확실한 정황의 거가 언니 손에 환하게 있다는 앞뒤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냥 아니라고 하다가 말이 막히면 을 들이다가 하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선의 방편이었고, 결국 얼마 못가서 하나씩 다 말하게 되었다.

   그 일을 전후로 그때부터 양심은 한시도 지 않고 내 가슴 속에 들어앉아 나를 다스리고 조절하고 림해왔다. 이 괴물은 손도 발도 없지만 눈만은 크게 달렸다. 보통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눈을 크게 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 맘대로 황포를 부리면 여간 괴롭지 않다. 이는 또 끈질기기는 그만이라서 내 나를 항복시키고 복종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눈을 감는 이 없다. 그는 내 마음의 하늘을 마음대로 바꾼다. 일기예보는 순전히 그의 손에 달렸다.  그는 바람도 되고 비도 되고, 천둥도 되었다가 번개도 되며, 무지게를 걸었다가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지었다.
   어느 날, 이렇게 막강한 양심이 내 안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아무리 커도 나보다 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 의식과 무의식을 다 합하고 내가 여태껏 습득한 지식, 습, 관념, 철학을 모조리 합한다 해도 너무나 작고 초라한 내 존재가 아니던가? 양심은 내가 자라가면서 함께 자라지만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클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우습지 않은가? 내가 내 속에 있는 나보다 적은 존재에 의하여 우되고 또 이를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태초 이래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신지 게 되었다. 삼라만상 자연 속에서, 역사 속에서, 나 개인의 생활 속에서 그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양심의 소리를 늘 세밀하게 듣지만 더 이상 내 가슴 안에서 닥거리는 양심을 의지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식 위의 지식, 법 위의 법,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이다. 나는 이 크고 비밀한 것을 향하여 날마다 조금씩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고, 내 양심도 함께 살찌우며 키워가고 있다.

2019년 12월 6일 금요일

달가운 형벌




이 글은 1919년 12월 6일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란에 실린 글입니다.






  나이 들어서 이사를 한다는 일은 어렵기가 형벌 수준이다! 평소에 려온 과분욕심오지랖으로 쌓아놓적체된 무절제의 무게감당하자니! 소리가 절로 난다.
   셋째 손자를 보면서 아들네와 합쳤던 살림을 내가 다섯살이 어서 다시 나누었다. 아들네와 함께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스테이징을 했다. 얼마의 가구와 대부분의 이삿짐을 미리 창고에 옮겨서 집을 널찍하게 보이도록 잘 정돈했다. 집이 팔리기까지 석달동안을 별 불편없이 잘 견디었다. 그러고 보니 창고에 보낸 물품들이 없어도 좋을만 했다.
   이사를 하고 창고에 두었던 이삿짐이 도착했다. 없어도 좋을것같던 그 짐들을 하나씩 풀면서 버릴까 말까 망서리며 고심했다. 대부분이 그에 묻은 사연과 애착으로 버리기 힘들었다. 다시 이 구석 저 구석 쑤셔 넣느라고  또 고심을 하고있다.
   이 아파서 오래 서있지 하는 나는 이걸 다 정리하려면 당한 시간이 걸릴게다. 기억력까지 가물 가물해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걸 어디다 었더라?" 내가 버렸나? 두었나?”ㅎㅎㅎ   더우기 나처럼 무얼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살림이 산뜻하고 간단하지 못하다. 자재를 모아놓고 공구와 장비를 구비하다보면 작업장을 따로 갖추지 못하면 복잡할 수밖에 없다.   물질이 귀하던 시절에 태어나 늘 부족한 가운데 자란 나는 아들 며느리와 달리 모든 것이 귀하다. 새집에서는 필요 없다고 려고 내놓았던 램프 스탠드너무 아까워서 슬쩍 갈무렸다가 가져왔다. 멋지게 장식된 무쇠 주물로 된 램프 스탠드의 받침과 폴대가 고급스럽고 스테인드 그라스의 쉐이드도 예쁘다. 전선을 뽑아내고 삼단의 높이를 1, 2단으로 줄이고, 쉐이드에 흙을 담아 그라운드 커버를 심었다. 아직은 리를 내리는 이지만 자라서 게 늘어지면 독특하고 멋진 운치를 연출하여 예쁠 것하니 물주기도 즐겁다.
   이렇게 재활용해서 만든 물품, 아니 작품들은 무척 애착이 가고 볼 때마다 마음에 소소한 기쁨을 건네준다. 누가 보고서 칭찬이라도 해주면 기쁨은 배가된다. 이러니 아마도 내가 살아있고 수족을 움직이는 동안은 내 주변의 복잡함을 면키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제 지난 사년, 삼대에 걸친 신세대와 구세대의 부비고 부대끼던 대가족, 누군가 하나는 성내고 삐치고, 누군가 한둘은 싸우고 울고, 누군가 하나는 병이 나서 아프고, 그 자글자글 끓던 모듬냄비의 어우러진 진국의 은 더 이상 다. 대신 남편과 아옹다옹? 시간이 더 아졌다. 남편은 정리를 천히 하자하는데 나는 숙제내고 싶어 조바심이. 하지만 라주지 못하니 바쁘다.
   이것이 내게 꼭 필요한가? 닦고 쓸고 어루만지면서 이 물건으로 내가 진정 행복한가를 물어본다. 그냥 예쁘니까 또는 값지고 좋은 것이니까 라는 이유로는 두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가 가져서 즐길 수 있도록 추려내었다.
  법정 스님과 같이 무소유를 실천할만큼 초월하지 못한 나는 몸의 기능이 감당하는 만큼만 욕심도 허영심도 부려야한다. 수시로 정다운 손길과 눈길의 교감을 나누는 물건만 남겨야 한다. 손과 발이 닿지 않는 오지랖도 접어야한다. 그래야 형벌 수준의 무게를 끙끙대면서도 달갑게 짊어질 수 있다. 돌아보며 감사할 여유도 생긴다.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램프 스탠드를 재활용 화분으로


셋째 손자를 보면서 아들네와  합쳤던 살림을 막내가 다섯살이 넘어서 다시 나누었다.
새집에서는 필요 없어 버리려던 램프스탠드를 슬쩍 갈무렸다가 가져왔다.스탠드의 받침이 무쇠 주물로 무거워서 바람도 타지 않고스테인드 그라스로 된 쉐이드도 예뻐서 화분을 만들고 싶었다.
먼저 전구를 빼내고, 전선을 뽑아내고, 모두를 분해했다. 
삼단으로 되어있는 길이를 
일단, 이단으로  줄여서 다시 조립했다.


쉐이드와 폴대 사이에서 물이 새지 않도록 
안에 비닐봉지를 잘라서 깔아 물이 폴대 안으로 흐르도록하고
흙을 채웠다. 

이 식물은 가늘고 긴 꽃대가 나와서
끝 부분에 자잘한 꽃을 피우고는 
그 자리에서 잎과 뿌리가 생기면서 포기를 형성한다. 
거기서 또 꽃대가 자라나와  다시 포기를 형성하면서 
이단 삼단으로 늘어진다.
생장력이 좋아서 흙과 물이 풍부하면 잘 번지고 번창한다.

이 식물은 그라운드 커버로 사용하는 식물인데 
잎이 자잘하고 반짝이면서넝쿨처럼 길게 자라니까 
밑으로 늘어지면서 자라 운치를 더할 것이다.

이것은 쉐이드가 못쓰게 되었다.
폴대를 아주 없애고
키를 낮추고 화분받침으로 쓰던 접시를
접착제로 붙여서
펠리칸 두마리를 얹어놓았다.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재활용품, 아니 작품들은
유별한 애착이 가고
볼 때마다 마음에 뿌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누가 보고 칭찬이라도 해주면 기쁨은 배가된다.

2019년 11월 7일 목요일

삶의 균형





2019년 11월 11일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란에 '균형 있는 삶을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삶의 균형


   균형, 발란스! 참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는 훌륭한 예술작품 속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화된  균형을 볼 때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동한다.  균형이 깨지면 아름다움도 망가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삶의 균형이 깨지면 불안해지고 행복은 그 찬란한 빛을 잃어버린다.

   둘째 손자가 카타리나 섬에 다녀 오는 날, 집에 들어오면서 검지를 치켜들고 우는 시늉을 했다. “아우 아퍼! 독수리가 내 손가락을 물었어요!” 고추세운 검지 손가락 위에는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부리를 박고 손가락 끝에 얹혀있다.
   기념품으로 사온 이 독수리는 무게 중심이 부리 끝에 모여있다. 독수리의 외양으로 보면 부리는 제일 앞쪽이고 몸체는 뒤에 있어서 부리 끝에 무게 중심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완벽한 무게 중심을 부리 끝에 두고 뾰족한 위에 오뚝 균형을 잡고 선 독수리의 묘기가 신기하게 보여 호기심이 발동하고 재미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걸음마를 배우기 이전부터 애써서 균형감각을 키워간다.  외줄을 타며, 평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떨어져내릴 위험을 안고 비틀거려야 하는 광대처럼, 위험천만한 곡예를 멈출 수 없이 감내하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삶에서의 균형은 물리적인 평형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데에 있다. 개인적인 기호와 의무를 사회적인 인종, 문화, 관습,  종교, 철학의 관념에 어떻게 안배하고 접목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루어간다.
  체력은 팔과 다리의 길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하루는 24시간으로 제한되어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쓸지, 내게 허용된 물질은 어디에 어떻게 소비할지, 인간관계는 어떻게 형성해갈지. 순간 순간의 선택은 이어지고 합쳐져서 인생을 직조해낸다.  일차원도 아니고 이차원도 아니고 삼차원도 아닌 다차원의 복합적인 영향을 분별하여 선택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은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른 선택은 방향을 비뚤어지게 하는 요인이 된다. 허나 심사숙고할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없음에도 우리는 순간 순간 숨차게 밀려오는 선택의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때로 우리가 절치부심 골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모를 일이 종종 생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진퇴양난에서 끙끙대지만 시간은  동정심이란 눈꼽만큼도 없이 매정하다. 기다려주지 않고 달려가버린다.
   삶의 균형은 평형이 잘 잡혀야 하지만 평형은 평등하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학적으로 균일하고 균등하다고 되는것도 아니다. 보고 느끼기에는 크고 무거운 일이 실제로 작고 가벼운 일에 중요성과 가치를 양보해야할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다양한 색갈과 크기와 비중이 어우러져서 대비와 대칭, 보완으로 잘 조화를 이룰 때에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우선과 차선의 순위가 분명해야한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것, 내가 싫지만 꼭 해야하는 것을 두고 면밀히 저울질 해서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개인 삶의 균형이 깨지면 가정의 틀이 보루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삶에 균형이 너무 크게 깨져서 그 파급이 가정의 보루를 넘어서면 사회가 보루가 되어야한다.  법과 제도가 필요한 이유다. 사회의 균형이 깨진 물결이 너무 거세면 나라까지 흔들리게 된다. 이에 균형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절감하게 된다.
   균형은 잘 잡아놓아도 세파와 풍파에 곧 밀리고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을 재간은 없어도 균형이 아주 깨져버리는 불행을 맞지 않으려면 개인에게는 가치관의 확립이, 사회에는 건전한 제도가, 국가에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요구된다.

   둘째 손자가 카타리나에서 사온 독수리 미니어쳐를 나무 젓가락 끝에 얹어보았다. 10도 쯤의 기울기로 이쪽 저쪽 기우뚱거리며 빙그르르 돌다가 오똑 멈춰섰다. 날개를 활짝 편 모양이라 마치 나르는 듯,  뾰족한 끝에 얹힌 모양새가 다시 봐도 신기했다.
  때로 큰 국난이나 사회적인 불안상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불굴의 역경을 딛고 두각을 나타내는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 나타날 때가 있다. 이런 위인들은 벼랑 끝에 서있을수록 밤하늘의 별처럼 길이 빛난다.  이들의 선견지명은 어쩌면 확고한 가치관의 정수를 한 눈에 알아보는 비범한 투시 역량이 있고, 이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거침 없이 희생할 수 있는 결단력과 실행 능력이 있었던 결과이리라.

   나같은 범인은 개인 삶의 균형, 좀 더 나아가서 가정의 균형만 잘 잡아나가도 성공한 인생이다. 가정안에서만 해도 사랑과 존중, 격려와 타협, 책무의 분담, 비전의 공유를 잘 조화시켜 매끄럽게 꾸려나가는 일만도 벅찬 일이다.
   균형잡힌 가정에서 뿌려진 씨앗들이 대를 거르는 동안, 누가 알랴? 인류에 보탬이 되는 거목이 생성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