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미주 중앙일보 2018년 10월 9일 오피이언 '이 아침에'란에 '한글날에 반성합니다,' 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오염된
일상어
부끄럽게도 아직
나는 영어가 무섭다. 그럼에도 내 일상의 언어 가운데는 영어가 많이 섞여있다. 좋은 한국말이 있는데도 영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이런 나를 두고 남편은 처음부터
영어로만 말하든지 아니면 모두 한국말로 하라고 핀잔을 주어 찬물을 뒤집어 쓴 듯 머쓱하게 만든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주체를 잃어버린 상황이니
지당한 얘기다.
영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터에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에게 지적을 받은 부끄러움에 할 말이 없다.
왜 이런 반갑지 않은 습관이 붙었을까? 일상생활에서 많이 만나고 부딪힌 경험에 따라
익숙해진 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때문이다.
영어만도 아니다. 스페니쉬까지도 섞여있다. 체계적인 언어를 공부한 게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생산 공장에서 히스패닉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에
몸으로 배운 말이다. 그 사람들도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하는 현장에서 눈치껐 서로 답답한 가슴을 치면서 울고 웃으며 콩나물 다듬듯 머리와 꼬리를 잘라내고 명사와 동사만을
나열하며 배운
말이다. 그러니 실제 상황에 수없이 부딪치며 써먹은 단어들이라서
나에게는 아주 매끄럽게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우습게도 영어로 말을 하다가 무심코 스페니쉬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스페니쉬를 모르는 상대가 못 알아듣고 짓는 의아한 표정을 보고서야 깨우쳐 얼른 고쳐 말하곤 한다. 상대편에서 볼 때에는 가뜩이나 발음도 나쁘고 영어도 서툰 사람이
엉뚱하게 스페니쉬까지 섞어 비벼놓았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진풍경 코메디가
따로 없다.
요즘은 모국어인 한국말도 서툴다. 한국 젊은이들의 말은 억양까지도 옛날과는 상당히
다르다. 또 인터넷 안에서의 말들은 구겨지고 잘려서 도무지 뜻을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긴 생활이 옛날과 많이 다르다보니 언어도 그에 따라
변천되어간다. 허나 지나치는 조급함과 천박함의
경향이 있다. 이렇게 빨리 말들이 변해간다면 아마 함께
공존하는 세대간에도 통역을 써야만 대화가 가능한 황당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렵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구세대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신세대에게도 큰
재앙이 될게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한자로 인해 빼앗긴 우리말의 영역을 모두 되찾기에는 한참 먼 상황이다. 거기다 우리말의 성장 속도로는 문화의 팽창속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
외래어를 꼭 섞어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반세기 이상을 담 쌓고 살아온 반쪽 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언어의 혼란이 더 말 할
수 없이 많을 게다. 우리 말은 이 혼란을 어떻게 겪어나갈지 의문이다. 실생활에 맞추어 새로이 생겨나는 말들은 의사소통을 돕고 언어를 살찌운다. 한편, 사라져가는 고운 말들도 꼭 붙잡아서 우리의 생각과 문화를
바르고 풍성하게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
말은 자꾸 써야 익숙해져서 자기의 것이 되고 서로간의 소통의 구실도 하게 된다.
고운 우리말과 함께 세계적으로 으뜸인 우리 글을 두고두고 오는 세대에 자랑으로 남겨주어야겠다. 이는 무심함으로 넘겨버릴 일이 절대 아니다. 상당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갖고 유념하여 함께 힘써야 할 일이다.
글짓기야말로 오염된 일상어들을 정화된 우리말로 아름답게 가꾸고 갈무리해 나가는 더없이
좋은 역활을 감당하리라 믿는다. 풍성한 문학의 유산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다양성의 믿받침이 되고 민족의 얼과 정신세계도 맑고 깊어지는 근간이 되리라.
생각할수록 고마운 세종대왕님!
다가올 한글날을
맞아 돌아본 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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