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년 9월 19일 '오피니언'에 실린 글입니다.
모자일까 신발일까?
나는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에 이것은 모자일까 신발일까를
생각한다. 보기만 좋은 허영심 보다는 실제로 편안해야 한다는 실속을 차리자는 뜻이다. 허나 요즘은 모자만 허영심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신발도 상당한 사치품이 돼가고 있기는 하다.
아침 등교길이었다. 네살베기 손자가 킨더가든에
가려고 신을 신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신던 신을 벗어던지고 도로 뛰어들어왔다. 머리 정돈을 해야 한다는 거다.
자유분방한 녀석이라 전에는 머리를 빗겨주려해도 도로 흩으면서 못하게 했었다. 어제
일이 생각 나서 웃음이 났다. 어제, 왕자 복장을 하고 오라는 선생님의
노트를 보고 버튼 다운 셔츠를 입히고, 머리에 젤을 바르고 가르마를 타서 뒤로 넘겨 빗겨주었다.
머리통이 앞 뒤 짱구라 깎은 밤 같이 귀여웠다. 손자가 거울을 보더니 저도 기분이
좋아져서 싱긋 웃었다. 아마도 선생님께도 칭찬을 들었던가보다.
오래전, 제목도 잊은
영화에서 시골 처녀 소피아 로렌이 도시로 나들이를 가면서 굽 높은 빨간 하이 힐을 신고 비틀대다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벗어서 가슴에 안고 걷던
장면이 생각난다.
드러내 얘기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난 이따금 옷가게 ‘로스’에 들러 한가하게 매장 안을 구경하며 얼간이의 속풀이 옷 구매를 한다. 이곳의 특징은 신상품이 아닌 대신 다양한 소재와 색조, 디자인이 섞여있고 가격이 싸다.
수더분한 내가 평소 입는 옷이 아닌 대담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옷들을 한 번씩 입어보기도 한다.
때로는 내 사이즈가 아닌 옷을 사가지고 온다. 숙제처럼 옆에 밀쳐두었다가 잠시라도 시간이
난다든지, 혹 마음이 복잡할때는 이걸 주무르고
씨름한다. 비경제적인 취미로 스스로의 일복을 보태기도 하지만 바느질하는 동안 시름도 날아가고 마음도 정돈된다.
만족하게 고쳐 입고 주위의 칭찬을 들을 때도 있지만, 걸국 못 입고 버리는 때도 가끔은 생긴다.
백화점에 갔다가 모자 코너에서 살 것도 아닌 모자를 이것
저것 머리에 얹고 거울 앞에 서서 제법 예쁜 표정을 지어보는 일도 있다. 실제로 사서 수 년을 써보지도 못하고
가끔 머리에 얹었다가 도로 옷장 선반에 모셔둔 것도 있다.
나는 여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외모에 관심이 많고 다소간에 허영심이 있지만, 남자들은 보통은 외모에 관심이 적고 허영심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다. 남편도 그러려니 했는데 그가 얼마 전에 파나마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내 생각에는 도무지 쓸 일이 없을거라서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고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며칠전, 지인 부부들과
한가한 담소를 나누다가 남편이 파나마 모자를 산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는 교회에도 쓰고 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질색하며 손사래를 치고 “제발 아스세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왜 안되냐고 정색을 하고 묻는다. “ 아니이, 며칠 전에 영국 해리 왕자의 결혼식을 티브이에서 봤는데, 모든 여자들이 각양 각색의 기발한
모자를 뽐내며 등장하는데 정말 멋지고 아름답더라구요. 상류층이 아닌 우리같은 여자들도 다 그런 모자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 있어요. 근데 만일
내가 그런 화려한 모자를 쓰고 교회에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라고 반박을 해서 한바탕 웃었다.
남편도 사실은, 머리를
갈라붙이고 좋아하던 손자같은 어린이가 커서 지금의 할아버지가 되었을테니 왜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노년은 무엇을 성취하려고 힘써 노력할 때가 아니라 버킷리스트를
만들어놓고 하나씩 해보는 시기라는 말이 있다. 남편의 버킷 리스트에 들어있는지 모르지만 파나마 모자를 쓰고 햇볕 밝은 해변의 식당에서 여유로운
오찬을 즐기는 나들이라도 만들어봐야겠다. 내가 굽 높은 구두를 신어줄 수는 없겠지만 로스에서 산 밝은 색의 시원한 원피스를 입어야겠다 . 이는 모자도 되고 신발도 되는 일 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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