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 1월 7일 미주 중앙일보 '열린 광장'에 실린 글입니다.
우리의 가슴 속에는 중요한
기관인 심장과 허파가 튼튼한 갈비뼈로 잘 보호 받고 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또 있다. 이는 형체가
없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에게 들어있는 양심이다.
내 생각으로는 양심은 태어날 때 갖고 태어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누구나 분명히 갖고 있다. 자라가면서 언제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 속 아주 중요한 자리를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양심을 나침판으로 붙들고 자신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직 셈을 모르던
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다섯 살 쯤이라고 생각된다. 서랍에서 큰 돈을 내 맘대로 가져다가 구멍가게에 가서 마음껏 썼다. 기껏 사탕이나 과자 정도였지만 나도 원 없이 실컷 먹었을 뿐 아니라 동생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신바람나게 후한 인심까지 쓰고는 거스름돈 간수를 제대로 못하여 들통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일이 발각나기
전에는 양심의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그 때에 나의 큰 언니가 나를 붙들고 오랫동안 달래고 회유시켜서 자초지종을 캐내었다. 지금 그 전말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열네 살 위의 큰 언니와 씨름하던 기억은 생생하다.
길 건너 맞은편에는 홍난파 선생께서 지으시고 사시던 붉은 벽돌로 지은 전망이 좋은 이층 양옥의 저택이
있었다. 큰 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 있었다. 벽돌 기둥을 세운 철대문 앞에는 콘크리트가 되어있고 쇠 파이프로 난간을 둘렀었는데 여기가
조무래기 또래들의 사랑 받는 놀이장소였다.
동무들과 공놀이를 할 때 흙바닥에서는
공이 이리저리로 튀는데 이곳 반반한 시멘트 바닥은 여자 아이들이 공을 튕기며 놀기에 좋았다. 여름에는 여기가 그늘도
좋아서 서늘한 나무 밑에서 공기놀이도 하고 또 쇠 파이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몸을 홀딱 뒤집기도 하며 놀았다. 길게 벽돌담을 따라가면 반대편에
좁고 가파른 층계가 있고 그곳에 작은 뒷문이
있었다. 언니와 나는 호젓이 이 층계에 마주 앉아 대결을 벌였다.
지금도 어제 일인 듯 생각난다. 온 세상을 황홀하게 만들었던 아름다운 노을이 그때
처음으로 내 어린 눈으로 들어왔다. 마주 앉은 언니의 얼굴은 노을빛을 받아 말할 수 없이 예뻣다. 우리는 온 하늘에 퍼져있던 황홀한 붉은 기운이 다 스러지고 푸른
회색의 어두운 기운이 우리를 감싸 조여 올 때까지 실랑이를 했다.
언니는 평소에 없던
따뜻하고 달콤한 말로 나를 회유시켰고 나는 내 의지의 한계에 이를 때까지 죽자고 버티었다. 나의 양심이 깨어나서 괴롭기 시작하자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편을 생각해 낸 것이 거짓말이었다. 확실한 정황의 증거가
언니 손에 환하게 있다는 앞뒤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냥 아니라고 하다가 말이 막히면 뜸을 들이다가 하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었고, 결국 얼마 못가서 하나씩 다 말하게 되었다.
그 일을 전후로 그때부터 양심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내 가슴 속에 들어앉아 나를 다스리고 조절하고 군림해왔다. 이 괴물은 손도 발도 없지만 눈만은 크게 달렸다. 보통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죽은 듯이
조용히 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 맘대로 황포를 부리면
여간 괴롭지가 않다. 이는 또
끈질기기는 그만이라서 끝내 나를 항복시키고 복종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눈을 감는 법이 없다. 그는 내 마음의 하늘을 마음대로 바꾼다. 일기예보는 순전히 그의 손에 달렸다. 그는 바람도 되고 비도 되고, 천둥도 되었다가 번개도 되며, 무지게를 걸었다가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지었다.
어느 날, 이렇게 막강한 양심이 내 안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아무리 커도 나보다
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 즉 의식과 무의식을 다 합하고 내가 여태껏 습득한
지식, 풍습, 관념, 철학을 모조리 합한다 해도 너무나 작고 초라한 내 존재가 아니던가? 양심은 내가 자라가면서
함께 자라지만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클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우습지 않은가? 내가 내 속에 있는 나보다
적은 존재에 의하여 좌우되고 또 이를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태초 이래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신지 듣게 되었다. 삼라만상 자연 속에서, 역사 속에서, 나 개인의 생활 속에서 그분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양심의
소리를 늘 세밀하게 듣지만 더 이상 내 가슴 안에서 콩닥거리는 양심을 의지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식 위의 지식, 법 위의 법,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이다. 나는 이 크고 비밀한 것을 향하여 날마다 조금씩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고, 내 양심도
함께 살찌우며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