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8일자 마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란에 실린 글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다. 난 손자 셋이
다 흐믓하지만 이제 곧 다섯 살이 되는 막내 이삭이 내게 각별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이삭을 보면서
성경속의 인물 요셉을 자주 떠올린다. 야곱이 요셉에게는 채색옷을 입힌 연유를 너끈히 알만하다.
이삭은 군인과 경찰을 좋아한다. 지난 할로윈에 입었던 경찰복과 모자를 아직도 수시로 꺼내 입고
논다. 이 옷에는 몽둥이와 칼, 수갑, 수신기까지 달려있다. 또, 평소에도 바지와 티셔츠,
모자까지 녹색 얼룩무늬 군복을 입기 좋아한다. 지난 해 여름에 이삭의 아빠가 길을
가다가 야드세일에서 사두었다는 캐머훌라지 패딩 점퍼까지 완벽한 군인 복장이다.
며칠 전, 이삭이 미국 국기의 패치를 내게 내밀며 가슴에 달아달라고 했다. 별들이 오른쪽에 있는 성조기다. 도톰한 것이 장난감 수준이 아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군인이 줬어요” “응?
군인이? 어디서?” “백화점에서요”
“백화점에서 샀어?” “사지 않았어요. 군인이
줬어요.” 아이의 대답만으로는 상황을 알 수 없어 얼룩무늬 모자 앞에 달아주고 나중에 며느리에게 물어봤다.
이삭이 엄마를 따라 백화점에 갔다. 저쪽에 정복차림의 군인이 두 사람 보였다.
이삭은 엄마를 잡아당기며 흥분한 소리로 “엄마! 저기 봐. 저기봐.
군인이 있어!” “가까이 가 볼래?” 고개를
끄덕이는 이삭을 데리고 군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거는 엄마 뒤에서 막상 아이는 숨었다.
군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군인이 엄마와 얘기를 하는 동안은 초롱한 눈길로
내다보다가 군인이 눈길을 주고 악수를 청하자 엄마 뒤로 꼭꼭 숨어버렸다. 그 날도 아이는 캐머훌라지 무늬의
티셔츠와 바지, 모자를 쓰고있었다. 군인이 웃으면서 손을 거두어들이고
엄마와 다시 얘기를 하는 중이다. 조금 후, 갑자기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는 와락 달려들어 군인의 바지가랑이를 꼭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군인을 좋아하는 열망이 수줍음을 이겼다.
일순간 당황했던 군인은 곧 감동했다. 자기의 군복 오른쪽 팔에 붙어있는 패치를 확 뜯어서 이삭에게
주었던 거였다.
이삭은 어려서 약했다. 젓살이 오르기도 전 쪼글쪼글한 갓난 아기가 치료를 위해 푸른 등을 몸에
동여매고 옹그리고 찍힌 사진을 보면 지금도 불쌍한 생각이 솟는다. 돌이 될 때까지는 잘 자라지도 않았다.
키가 제 나이 분포의 5%군으로 작은 편이라 한 방울이라도 우유를 더 먹이려 애를
쓰는데 그나마 먹은 것까지 수시로 왈칵 다 토해내서 제 어미나 나의 애간장을 녹이던 아이다.
이삭은 영민해서 웬만한 일은 말로 설명하면 다 알아듣는다. 날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깜짝
놀라게 하는 신기한 사건을 만들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싹싹하고 영특해서 어디가나 귀여움을 받는 아이다.
열 살 위인 형의 친구들이 와도 형을 제치고 먼저 뛰어나가 반갑게 맞아서 사랑스런 마스코트가 된다.
저녁 식탁에서 아들이 할머니의 유방암 소식을 전하면서 매일 이를 위해 기도하고 할머니에게 스트레스를 드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전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이삭은 얼굴을
약간 찡그리고 한 쪽 눈살을 파르르 떨더니 마음에 꼭 담았나보다. 밤에 잠자리 기도에서 제 어미에게 할머니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하더라고 했다.
이틀 쯤 후에 이삭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빠방엘 찾아왔다. “아빠! 아빠는 할머니 때문에 걱정해요?” “응? 아니,
걱정은 안 해, 관심을 갖고 기도하지!” “너는, 너는 걱정하니?” 이삭이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했다.
이렇게 행복한 할머니가 또 있을까? 이렇게 든든한 중보 기도를 듣고 마음이 녹아버린 할미의
행복이라니! 유치원 갈때와 돌아와서는 꼭 할미의 가슴에 대고 “호오!,
호오!”를 불어주는 이삭이다.
오늘은 이삭이 BTS 음악에 푹 빠져서 춤을 추는데 머리 속에서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리듬에 맞춰서 몸을 흔들 때 느끼는 기쁨을 깨우친 모양이다. 이삭에게 들키지 않도록 오리걸음으로 살살 다가가 숨 죽이며 몰래 비디오를 살짝 찍어두었다.
아들네와 살림을 합쳐서 사년째다. 한 집에서 부대끼지 않았다면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소중한
행복들이다.
요셉이 형들의 시샘으로 어린 나이에 타국의 노예로 팔려가서 파란만장의 삶을 살면서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굳건히 성장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쓰임받으며 개인의 영달은 물론, 결국엔 나라를 흥왕케 하고, 이웃나라까지
백성을 구휼하고, 가문을 살려냄은 물론 하나님 나라의 계보를 세운것과 같이 이삭도 큰 인물로 자라나는 그림을
그리는 이 함무니는 무한 행복하다.
이웃에 사는 이 여자 아이는 이삭보다 한 살이 위인데
매일 함께 놀아요.
놀러 나갈 때는 머리까지 손질하는 걸 보면
귀엽기도하고 우습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