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사람들의 자존심은 축구와 삼바와 예술에 있다한다. 특히 건축예술은 상당히 발달된 편이라 아름다운 건축물이 상당히 많았다. 이는 세계적인 명성의 건축가가 있기 때문이라 했다.
새 수도, 브라질리아를 그의 설계로 조성했다는데 지금은 칠순이 넘으신 분이라 했다. 그가 설계하여 지은 유명한 현대식 건물의 성당으로 갔다. 피라미드형의 높은 탑 모양으로 지은 건물은 긴 사다리꼴의 팔면체로 되어있었다. 네 면은 넓고 네 면은 좁은데 좁은 부분은 세로로 길게 스테인드 그라스로 돼있었다.
성당에 들어서니 광장만큼이나 넓은 성당에 사면으로 까마득히 높은 천장에서부터 땅에까지 스테인드 그라스로 투영된 오색의 은은한 빛이 어두운 성당을 밝히고 있었다. 성당의 중심부에 좁은 천장은 십자모양으로 자연 채광이 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한눈에 모든 중심을 위로 향하여 까마득히 높은 천정의 밝은 십자가에 모아지도록 설계된 것이 메시지가 뚜렷이 드러난 훌륭한 작품으로 보였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 소집시간까지 한시간반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시차가 있어 여기는 네 시간이 빠르므로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피곤했다. 그러나 여행 첫날이라 나는 약간 들떠 있어서 방에 들어가 쉬지 않고 몇명의 동료들과 호텔 앞에 있는 큰 공원을 산책했다. 잘 손질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군데군데 조각품들도 있고 작은 연못도 있다. 키가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서 한낮인데도 서늘했다. 중국마켓이나 태국마켓, 또는 한국마켓에서도 본적이 있는 두리안이 높은 나무에 열러있는 것을 보았다. 먹어본 적은 없다. 구린내가 나지만 맛은 더할 수 없이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높은 위치에 사람 머리통만한 크기로 달려있는 게 신기했다. 만일 모르고 지나다가 떨어지는 두리안에 맞으면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브라질에서는 쌍 파울에 한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살고 있고, 쌍 파울 동양선교교회는 쌍 파울에서 제일 큰 교회다. 우리가 갖고 온 두벌의 드레스 중에 까만 드레스를 입고, 연습하기 위해 미리 도착했다. 넓고 큰 교회건물은 장식이 별로 없는 창고식의 건물이었다. 오늘은 수요예배로, 성도가 백 오십여 명이 모인 가운데서 우리가 찬양을 했다. 성가를 여섯 곡, 핸드벨, 가곡을 세곡, 고향의 봄의 순서로 진행 되었다. 고향의 봄을 부를 때에는 성도 중에 눈물을 닦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우리들도 코끝이 찡 하고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순서를 끝내고 아홉시가 넘은 시각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원래 브라질 식은 아홉시가 넘어서야 식당이 붐비기 시작한다고 한다. 낮이 뜨겁기 때문에 낮잠 자는 시간이 공식적으로 있고 저녁은 늦게 먹는 풍습이란다.
쌍 파울 교회의 어떤 장로님의 초대로 브라질 바베큐 식당에서 화려한 저녁을 푸짐하게 먹었다. 고기는 소, 돼지, 양, 닭의 고기를 부위별로 긴 쇠꼬치에 꿰어서 구은 것을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식탁을 돌면서 즉석에서 원하는 만큼 무제한 잘라주는데 기름이 없고 연했다. 야채는 보드랍고. 과일은 달고 향기로웠다. 낙농이 발달한 곳이라 후식이 모두 맛있고 훌륭했다. 모두 배를 두드리며 과히 먹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즐겼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 보니 15.75 헤아스라는 간판이 보였다. 미국 돈으로 8불정도이다. 여기에 음료수와 후식은 따로 계산된다. 그래도 미국에 비하여 삼분의 일 가격인 것 같았다.
20일-
새벽 다섯 시 기상하여 호텔에서 든든히 아침식사를 하고(“아 파파야! 정말 맛있어!”) 버스로 비행장으로 떠났다. 대도시라서 출근시간은 혼잡했고 또 일방통행로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Rio de Janeiro (항공시간 한 시간 십분)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가 대기해 놓은 버스로 꼴꼬바도(예수동산)으로 갔다. 한쪽은 경사지고 다른 한쪽은 절벽으로 되어있는 높은 산 위에 십자형으로 팔을 벌린 거대한 예수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산의 경사진 쪽으로 우리는 기차를 타고 삼십분 정도 S자로 구불구불 숲 속으로 올라갔다. 우거진 열대림을 지나면서 식물원이나 화원에서만 보던 트로피칼 플랜트들은 꽃도 크고 잎도 연하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몇 개의 역을 거치면서 원주민으로 보이는 흑인들이 한둘씩 합류해가며 그들의 특유한 장단으로 원주민의 생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일행 중에 멋쟁이 수잔 언니가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며 모자를 들고 다녀서 꽤 많은 팁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는 대부분이 손자들이 있는 할머니들이다. 그럼에도 나이는 꽁꽁 묶어서 집에 두고 왔는지 수잔 언니의 익살스런 춤에 세상모르는 어린애들처럼 숨넘어가게 웃었다.
절벽 위에서 예수는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돌조각으로 모자이크 하여 쌓아올린 압도적으로 거대한 돌상이다. 받침대 부분은 십여 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작은 성당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미사를 드린다했다.
예수 석상은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넣기가 힘들었다. 원래 이곳은 경치가 좋아서 힘 있는 자들의 환락을 위한 장소였었다고 한다. 캐토릭 국가인 브라질은 너무나 부도덕하고 마약과 환락에 빠진 이 도시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사방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이 자리에 삼년에 걸쳐 예수상을 세웠다 한다. 실제로 밤이나 낮이나 도시 어디에서도 보이는 이 예수상이 서고부터 범죄율이 이십 퍼센트가 줄었다고 한다. 여기서 리오 데 자네이로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는데 사면팔방 어디를 보아도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다웠다
시내로 내려와 그 유명한 코파카바나 해변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해변에 나가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았으나 일정을 맞추려면 그럴 시간이 없었다.
빵지아쑤까로 갔다. 아쑤까는 설탕이란 말이고 보면 sugar bread 라는 말이다. 바다로 향하여 길게 나간 산 끝자락에 불란서 빵을 반으로 뚝 잘라서 세워놓은 것 같은 한 덩어리의 큰 돌산이었다. 이곳을 케이블카로 올라가는데 우선 산에 올라가서 다시 빵산 위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이 케이블카는 높기도 하고 길기도 했다.
저만치 서로 마주 보이는 꼴꼬바도(예수 상)에서와 같이 이곳에서도 항구가 내려다 보였다. 맑은 바다의 푸른 물빛과 들고나는 오밀 조밀한 흰 모래의 해안들, 우뚝우뚝 솟은 돌산, 푸른 숲과 어우러진 하얀 별장들, 안으로 들어온 만을 이어붙인 긴 다리, 숲이 우거진 작은 섬들,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참 아름다웠다. 세계 삼대 미항중의 하나라는 명성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쌍파울로 교회에서 찬양
성당
꼴꼬바도에서 내려다본 리오의 전경
리오의 다른쪽 전경
예수동산의 예수상
예수상의 받침대 안의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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