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9일 목요일

비익 연리 比翼連理




이글은 미주 중앙일보  5월 9일자 '이 아침에'란에 '비익연리 比翼連理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비익 연리는 백거이白居易 장한가長恨歌에 나오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는 사랑의 극치를 이르는 뜻이 있다.

   비익조는 본 사람이 없는 상상의 새지만 연리지는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가끔씩 발견되는 나무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둥치나 가지가 붙어서 상통하는 한 나무가 되었다. 두 나무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두 나무이면서 또한 생살을 찢고 피를 흘리기 전에는 가를 수 없는 한 나무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한 나무인데 한쪽에서는 붉은 꽃을 다른 쪽에서는 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연리지가 되면 물론 각각의 한 나무일 때 보다는 상호보완으로 생장력도 더 강해진다.
   연리지는 사랑 이야기지만 아무리 영혼을 불태우는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불꽃이 순간에 그친다면 이에 미치지 못한다. 세월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섣불리 대적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금슬이 좋은 장년이상의 부부를 뜻한다.
   부부의 금슬이 좋은 뜻으로는 해로동혈偕老同穴이라는 말도 있다. 살아서는 함께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말이다. 아마도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부러워할 이생의 최고의 아름다움이라 말해도 좋으리라.

   언젠가 티브이에서 낱말 알아마추기 게임을 봤다. 노부부가 짝을 지어서 한 사람이 주어진 낱말을 설명하면 짝이 된 사람이 맞추는 게임을 했다. 할머니가 알아맞추어야 할 낱말은 천생연분이었다.  퀴즈를 받아든 할아버지는 잠시 난색을 표하더니 이리 저리 몇 번 설명을 했지만 할머니가 알아맞추지 못하자 그거. ? 우리 같은 거 있잖아 그걸 뭐라고 하냐구?” 할머니는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웬수라고 대답했다. 방청석이나 진행자가 넘어갈 듯 웃어젖혔다. 할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을 거두고 아니 그런거 말고 우리처럼 오래 오래 네자로 된거 있잖아?” 곧바로 나온 할머니의 총알 대답은 모두를 눈물까지 흘리며 웃게 만들었다. 할머니의 대답은 평생 웬수였다.
   이분들의 결혼은 금혼식을 훌쩍 넘겼고 앞으로의 삶이 십년은 몰라도 이십년은 확신할 수 없을 듯 했다. 누구라도 이분들이 해로동혈 할 분들이라 생각할 만 했는데 이건 또 무슨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율배반의 말일까?  진행자나 방청석의 대다수, 아니 시청자의 대다수가 이 촌철살인의 코미디로 허리를 꺾고 눈물을 훔치며 웃었을 그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다소간에 차이는 있겠지만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암수가 한 쪽 눈과 한 쪽 날개만 있다는 비익조는 함께 날아야만 비상할 수 있다. 완벽한 공조를 이루지 않으면 날다가도 떨어질 운명이다. 새가 날지 않으면 먹이도 찾을 수 없으니 혼자서는 생명조차 이어갈 수 없다. 절체절명으로 상대가 필요하고 호흡을 같이해야 하는 관계다.
  두 눈을 다 뜨고 보이는대로 다 보고 두 팔을 마구 휘두르며 평생 웬수를 외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때론 한 눈을 감고 한 팔을 접을 일이다. 비익조는 사랑의 극치로, 한 눈을 감고 한 팔을 접고, 숨결조차 같이하는 완벽한 합일을 이룰 때에, 결국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짧은 인생길이다. 천생 연분으로 해로동혈할 사이를 평생 웬수라 부르며 길지 않을 남은 날들을 허비할 일일까? 연못이 가슴 가득히 안고 있는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워올리듯 비익 연리로 천상의 열락을 누릴 홍복을 만들어보는 일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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