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15일 월요일

사랑하는 까닭에




미주 중앙일보 2019년 7월 17일자 '이 아침에'에 실린 글입니다.





   막내 손자 이삭이 목 놓아 울었다.
눈물이 그치지를 않는다. 달랠 길이 없다.  안아 줄 나이는 지난 다섯 살을 갓 넘긴 아이. 어미 품에서도 울음을 그치지를 못한다. 너무 울어서 여린 눈자위가 불그레 퉁퉁 부었다.

   되돌릴 수 없는 무정한 이별. 그 뼈아픈 아픔을 처음으로 생생히 체감하는 중이다. 잠시 였지만 정들인 생명체를 잃은 상실감이 너무 크게 아펐나보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랑의 단절이니 이렇게 크는 거겠지!
   엄마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모두 입가에 웃음을 띠우면서도 하도 서럽게  흐느끼는 녀석의 애련한 울음 소리로 마음엔 안타까운 슬픈 안개가 뿌옇게 서린다.

   전에 살던 집에서는 달팽이가 너무 많아서 진저리를 치고 보이는대로 잡아내고 정기적으로 약도 뿌렸다. 어쩐 일인지 이 동네엔 개미도 흔치 않다. 학군이 좋은 동네라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가 집집에 아름다운 정원보다는 수영장이 많고 페스트 콘드롤을 너무 잘 해서인지 벌레가 귀하다.
   뒷마당에서 큰 포도알 만 한 달팽이를 보니 새삼 반가웠다. 잡아다가 둘째와 이삭에게 보였다.  둘째가 이유! 징그러워하며 뒤로 물러선다. “아냐! 너무 귀여워! 자세히 보렴!” 집게 손가락에 잡힌 달팽이를 내 왼쪽 손등에 얹었다. 움츠렸던 달팽이가 천천히 더듬이를 내밀고 길게 기어나와 앞으로 기어간다. 두 녁석이 얼굴을 디밀고 초롱한 눈길로 재미있는 듯 모양새를 관찰하며 질문이 많아진다. “이게 뭐야?” “스네일이야 한국말로는 달팽이야  이건 뭐야!” “더듬이야” “눈은 어디 있어?” “눈은 없어. 그냥 더듬이만 있어.”  이거는 뭐야?” “집이야” “이게 집이야?” “응 이게 집이야. 달팽이는 참 연약하단다. 아주 겁이 많고 수줍어. 그리고 아주 느리거든. 집을 지고 다니면서 조금만 무서워도 집 속에 들어가서 숨어. 그래서 힘들어도 집을 지고 다니는거야. 이거 봐.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리잖아!”
   네 손바닥에 놓아볼래?” 두 아이가 다 펄쩍 물러나며 싫단다. 난 내 오른 손바닥을 혀로 살짝  핥으며 그냥 이런 느낌이야!” 둘째가 먼저 하니 이삭도 해보겠다고 나선다. 달팽이를 손에 놓으려 하니 고개를 돌린 채 손바닥을 내밀고 눈을 꼭 감는다. 온 몸에 힘을 주어 바짝 긴장하고 파르르 떨며 높은 소리를 지른다. 
   한 번 하더니 팔에도 놓아보고 종아리에도 놓아보며 짜릿한 기쁨의 교감을 주고 받는다. 두 녀석이 서로 번갈아 괴성을 지르고 깔깔댄다.
   이제 고만! 내가 말했잖아. 얘는 아주 겁이 많고 약하다고. 이제 여기다가 넣어서 쉬게 하자.  맑은 유리병에 물을 한 수저 붓고 양상추를 조금 넣고 병에 넣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밤 동안에 양상추를 뜯어먹은 자리와 까만 실밥같은 똥을 눈 것을 함께 확인했다.
   이삭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먼저 병을 들여다보고  달팽이의 안부를 살핀다.  아 이를 어쩌나!” 달팽이가 없어졌다. 뚜껑이 부실했나보다. 이삭의 실망이 컸다. 어딘가에 기어들어가 숨어있을 테니 할머니가 잘 찾아보겠다고 달랬다.
   다음날 저녁, 둘째가 온 집안에 들리도록 큰 소리를 질렀다. “달팽이 찾았다!” 이삭의 상심을 알고 있던 온 식구가 반가워하며 모여들었다. 제 집 속에 꽁꽁 숨은 달팽이는 나오지 않았다. 제 어미가 말라서 죽었다. 내다버리자.” 죽었다는 말에 그만 이삭의 슬픔은  무너져내렸다.

   한 시간쯤 후다. 병에 다시 넣어둔 달팽이를 살피다가 둘째가 다시 크게 소리쳤다. “이삭! 이삭! 달팽이가 살았어!”
   난감한 슬픔에 물들었던 온 식구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달팽이가 느리게 천천히 나오면서 제 모습을 보여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난 양 모두가 웃으며 기뻐하고 안도했다.
   이삭!, 얘는 지금 많이 지치고 또 엄청 아플꺼야! 그리고 얘는 이 병 속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까 도망갔었지! 여기는 감옥 같을 꺼야! 그러니 우리 밖에 가서 놓아주자!” 이삭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삭과 함께 뒷마당에 나가서 스프링클러가 막 끝난 젖은 그라운드 커버 위에 그를 놓았다. 달팽이가 길게 몸을 늘이고  활발하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저봐라! 쟤가 참 좋아하는구나! 그렇치?”  야아!”

   달팽이의 재롱을 재미있게 보고 즐기며 가지려던 이삭이 달팽이를 흔쾌히 자유롭게 놓아주면서 오히려 상실의 아픔을 치유함을 본다. 며칠 전, 유치원 졸업식에서 앙증맞은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마이크 앞에 나와서 나는 이다음에 커서 군인이 되고 싶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를 보호히고 싶어서요라고 말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나라를 위해서 용맹을 떨쳐야 할 군인이 되고 싶은 이상과 달팽이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여린 잔정의 커다란 간극, 그리고 이삭의 생애에 앞으로도 수없이 만날 애별리고*를 꿋꿋이 잘 감당해 내라고 축복하며 달팽이의 힘찬 전진으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애별리고愛別離苦 불가에서 말하는 팔고八苦의 하나. 부모나 형제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
팔고 생노병사의 사고四苦, 애별리고愛別離苦 ,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음五陰  정신과 물질을 다섯으로 나눈 것.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

2019년 6월 26일 수요일

서리꽃





2019년 6월 26일자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에 실린 글입니다  

 난 머리를 염색하지 않았다.

  내 머리칼은 그냥 내 나이에 걸맞게 희다. 내 머리를 두고 여러사람들이 여러모양으로 얘기를 한다. 머리를 염색하면 십년은 젊게 보일거라며 물 들일 것을 적극 권한다. 그럴 때는 나를 위해서 해주는 조언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좀 더 단정할 수 있는데 게으르다거나 너무 무심하다는 약간의 비난조가 깔려있는 말은 아닐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애초에 시작하지 않기를 너무 잘했다고 한다. 자기는 중도에 그만둘 수가 없어 계속하지만 너무나 귀찮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고 나보고 절대로 시작하지말라고 강하게  말하기도 한다. 자기는 머리를 염색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뿌리에서부터 하얗게 자라 올라오는 것이 너무나 얄밉기까지 하다고 진저리를 친다.
   때로는, 내머리 정도면 자기는 절대로 염색을 하지 않을거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는 일찍 머리가 희어져서 흰머리가 너무 많으니 염색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기는 요즘은 얼굴이 팽팽하고 자세가 꼿꼿한 노인같지 않은 노인이 많다보니 오히려 흰머리가 더 어색한 사람도 많다.
   그런가 하면 주름진 얼굴이나 구부정한 자세로 봐서 나보다 한참은 연배일 것 같은 파파 노인이 머리를 새까맣게 혹은 빨갛게  염색해서 보글보글하면 난 희끝한 머리를 하고 그 앞에 서기가 오히려 좀 면구스럽기도 하다.

   어떤 자리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같이 서리를 이고 있는 사람을 보고 어르신이라 칭할때가 있다. 어르신이란 칭호는 늘 들을 때마다 내게는 생소하고 참 낯설다. 그럴 때, 과연 내가 어르신스러운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만 결론은 언제나 정말로 자신이 없다.
   어르신스러우려면 우선 품도 넓고, 지혜도 많고, 인생을 어느정도 달관한 경지에 도달하여 좀처럼 희비를 드러내지 않는 원숙함과 초연함이 있어야 하리라. 그런데 난 아직도 치기어린 호기심이 있어 때늦은 후회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철딱서니 허영심도 있어 스스로 주책없다고 자책하고 자제하는 때도 많다. 감추고싶은 연약한 점도 많고, 여태 놓지 못하는 허망한 꿈도 있다. 작은 일을 붙들고 걱정도 많이 하고, 툭하면 삐치고 성내며 눈물까지 찔끔 짜는 푼수다. 
   어르신이란 칭호보다는 '어리신'이라 불리워야 마땅할 정도다.
   그럼에도 세월은 철딱서니 나에게 서리꽃을 달아주었다. 어르신스러워서 서리꽃을 달아준 것이 아니고 서리꽃을 달았으니 이제는 좀 어르신스러워보라고.

   세월을 야멸차다고 입이 삐뚤어지게 원망하다가도 미안해서 돌이켜 그만둔다. 세월에게 진 빚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나이 살아있도록 시간도 기회도 충분히 주었건만 다 놓치고 허비했으니 할 말이 없고 염치가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내 머리에 얹힌 서리꽃은 자랑할 것도 없지만 수치도 아니니 누가 뭐라 하든 난 염색을 안 하고 그대로 두려고 한다. 그냥 세월의 다정한 선물로 알리라. 아무나 다 받는 선물도 아니다. 주위를 둘러 뒤돌아보면, 못내 안타깝게도 먼저 저세상으로 간 그리운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푸른 하늘을 보지 못한다. 이 달콤한 복숭아를 맛보지 못한다.

   난 그저 세월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주어지는 나머지 날들을 더욱 소중히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2019년 5월 27일 월요일

일소행日少幸




2019년 5월 31일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란에 실린 글입니다.




   무심한 사이에 엄청난 손해를 본다면? 거기다 그렇게 상당한 손해를 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일소행日少幸이 그렇다. 우리가 커다란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바삐 지나는 사이에 자칫 일상의 소소한 행복들은 우리 곁을 무심히 지나가버린다.
   보통 우리가 아프지 않고 인생 80년을 산다면 ‘26년을 잠자고, 21년은  일하고, 9년을 먹고 마시지만, 웃는 시간은 겨우 20. 그에 비해 화내는데는 5, 기다림에 3년을 소비한다.’  계산을 본 일이 있다요즘 수명이 늘어 백세 시대가 되었지만 더 오래 산다고 쳐도 자고 일하고 먹는 일이야 비례하여 늘어나겠지만 웃고 행복한 시간은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이 계산대로라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힘겹게 살아왔는데그럼 앞으로의 삶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국은 웃고 행복한 시간은 고작 일생중에20일이라니!
   앞으로는 마음가짐을 고쳐서 밝은 눈으로 내 삶의 일소행들을 낱낱이 주워담아보기로 했다. 일소행은 마음 먹기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난 이런 보석같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우리 주위에 널린 것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면서 지나쳐버리고 무심히 지내온 것을 후회한다.

   천성으로 게으른 내게 자명종은 얼마나 고맙고 귀여운지! 이십여년 내 머리맡을 지키는 손 안에 들어갈 만한 작은 세이코 시계. 남편이 일본 출장가서 사온 건데 귀뚜라미 소리로 정겹게 나를 깨운다. “고맙다 시계야!”말하면서 자명종을 껐다.  밤새 피곤과 씨름한 몸에 갈증을 적시는 생수 한 컵은 또 얼마나 시원한가!“아 시원하다!”말하고 씽긋 한번 웃었다.
   창문을 열고 숨을 깊게 들여쉰다.담장의 핑크 재스민의 꽃향과 레몬나무의 수향과 풀내음 섞인 아침 공기가 달고 신선하다. 깊이 들여마시고 잠깐 미소를 지었다. 밤에는 잠자던 도시의 소음도 활기차다. 맑은 물 콸콸 쏟아지는 상수도, 구정물 쑥쑥 빠지는 하수도도 마냥 고맙다! 거울을 보고 씽긋 웃어본다. 하루 종일 그렇게 웃으리라. 아침 인사 건네는 목소리들 정겹다! 시장끼 달래는 소찬도 달다. “아 감사해!” 내가 웃으니 모두가 나를 따라 웃는다. 하늘도 구름도, 나뭇잎도 풀잎도, 꽃은 물론 내 눈길이 머무는 빛을 받은 모든 사물이 나를 따라 반짝이며 웃는다.
   지금 우리는 예전엔 임금이나 황제라도 누리지 못했을 큰 복을 일상으로 누리고 사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음식만 해도 사철을 안 가리고 지구촌 각 나라 음식과 과일을 다 섭렵하며 즐기고 산다. 문명의 이기로 누리는 편리함은 또 어떤가? 말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바라는 것들이 여전히 많고, 불만이 쌓이고, 불안해하면서 그에 눌려 사는지
   커다란 상자를 하나 준비해두고 소원들을 넣어두기로 했다. 큰 소원은 기도칸에 넣고, 먼 후일은 계획칸에 넣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때때로 솟구치는 분노는 믿음칸에 넣어두기로 했다. 내힘으로 되는 것은 물론 내가 힘써 하지만 안 되는 것들은 이 상자에 넣어두고 시간이 무르익고 맛이 숙성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오늘의 일소행들을 열심히 주워담으며 히쭉 헤쭉 웃으며 살리라. 옛날에는 임금님만 서빙고에서 가져다 먹던 어름이다. 이 더운 여름에 집안에 서빙고를 두 개나 들여놓고 손만 뻗으면 시원함을 맛 볼 수 있다. 발품을 팔지 않고도 아이패드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편안한 자세로 앉아 여행한다. 한국의 형제를 화상통화로 대화하고 영국 황실의 결혼식을 초대받은 것 보다 더 편히 구경한다. 주어진 복도 일일히 다 챙길 수 없이 많은 세상이다.
   인류 역사 이래 이렇게 큰 복을 누리는 세대가 있었던가? 먼데 행복만을 바라며 안달하지 않기로 했다. 눈길을 돌려 이미 손 안에 들어있는 행복들을 온전히 누려야겠다.

   일소행들을 무심한 사이에 놓쳐버리지 말고 거두어 꼭꼭 곱씹어 맛 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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