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우선순위를 찾아라





2019년 10월 17일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란에 '혹시 이거 게임중독이 아닌가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치매를 방지한다는 핑게로 신문에 나오는 수도쿠를  즐겨 했다. 신문을 버릴 때에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 것은 나중을 위해 모아두기도 했다. 이걸 보고 딸이 연필도 지우개도 필요없이 핸드폰으로 언제나 하고 싶을 때는 할수 있다고 가르쳐주면서 ‘2048’이라는 게임도  곁드려 전화기에 실어놓았다.
   가로 4, 세로 4칸의 사각안에서 손가락으로 밀면 모든 수가 그 방향으로 밀리면서 같은 수끼리는 합산이 되고 2 4의 새로운 수가 뜬다. 그러면서 점점 높은 수를 만들어가는 게임이다.

   병원에서처럼 잠시 기다려야 하는 동안에 멍하니 있기보다 이런 게임을 하기에 딱 좋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2048에 도달하고 나니 재미가 붙었다. 멍때리던 시간에만 심심풀이로 하던것이 4096을 향해서 더 자주 짬이 날때마다 했다. 4096에 도달했을 때는 !” 하는 탄성과 함께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았다. 화면에 축하한다며 당신의 다음 골은 8192입니다는 글이 떴다. 순간 기쁨은 싹 사라지고 아득한 목표를 득달하는 게임의 상술이 얄미웠다. “이젠 고만 해야지작심하고 전화기를 꺼버렸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 무료한 시간에 자연스레 다시 하게 되었다. 어줍잖은 도전정신까지 꿈틀댔다. 과연 한계가 있는 사각의 좁은 범위 안에서 그게 가능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8192까지만 더 해보기로 했다.

   평소에 사행심이 없다고 자부해 왔던 나인데 이상하다.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으면 슬그머니 머리맡에 전화기를 당겨서 ‘2048’을 한다. 처음 4096에 도달했을 때에 짜릿하던 맛은 이미 없다. 자주 그에 도달하고 8192에 도달해서도 아하 여기까지도 되는구나!”  하는 정도다. 다음 목표는16384라는 문구를 보자 이번엔 가는데까지 한번 가보자는 배포 큰 마음이 생겼다.
  높은 수에 도달하기까지는 수천 번의 손가락 움직임이 있은 후에 이루어진다. 게임에는 함정의 복병이 깔려있으므로 수가 높아갈 수록 같은 수를 만들어 합산하기가 어려워진다. 가다가 그만 간단한 실수로 인해 게임이 종료된다. 그러면 큰 낭패감을 안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초기단계에서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여러 방법이 있지만 수가 높아질수록 움직이지 못하는 부동수가 늘어서 활용 칸수가 줄어들어 실수가 용납이 안 된다. 용의주도하게 몇 수 앞까지 치밀하게 생각해 우선순위를 찾아야 하는데 이 게임은 2 4의 합산으로 초간단 하다는 장점이 맹점이다. 타성에 젖어 자칫 실수가 되면 단 몇 수 후에는 게임이 종료된다. 간단한 실수임으로 다음에는 잘 할 수 있겠다는 허망한 희망이 또 생긴다. 어처구니 없게도  다시 시작한다. 바보같이!

   이걸 어쩌나게임에 열중하다가 중학생 손자에게 들켰다. 높은 점수의 기록을 보고 경이롭다는 듯 크게 놀란다. 그냥 웃어주었지만 내심 가슴이 뜨끔했다. 높은 점수가 그냥 나오지 않았으니 그만큼 많은 시간을 쓰잘 데 없이 허비한 까닭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치매예방을 핑계로 시작했지만 게임에 집착하다보니 중독이 되면 오히려 치매를 불러오는 사태가 생길까 우려까지 되었다. 일단 높은 점수에 이르면 머리에 산소를 공급하고, 눈도 쉬기 위해서 멈추었다가 나중에 다시 하는 것이 좋은데 그게 안 된다. 눈이 마르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집착이 되어 계속하게 된다. 중독성의 무서운 마력이다.
   이 게임은 돈이 들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손만 뻗으면 전화기로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오히려 화근이다.  그렇다고 고득점으로 무엇이 생기는 것도 없다. 그럼에도 손 쉬운 성취감으로 말초적인 희열을 느끼는 매력에 속수무책 빠져드는 어리석음!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 있다는 핑계로 더욱 더 깊이 빠져드는 자기 기만!
   일단 이쯤에서 멈추어야겠다. 혹여 나중에라도 손자에게 떳떳하게 할 말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전화기에서 ‘2048’을 아예 지워버렸다.

   우리 인생도 이 게임처럼 우선 순위의 가치를 잘 찾아내어 실수 없이 실행해 나가야 후회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게다. 타성에 젖어 헛수를 둔다든지 말초적인 희열을 따라 가면 자충수로 얼마 못가서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판세가 되고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