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하게 해가 져서야 이과수 Rafain Hotel에 도착했다. 객실이 여섯이나 여덟 개씩 붙어있는 이층건물이 널따란 잔디에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다. 분수대 앞 잔디에서 밝게 빛나는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피자를 주문해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남미 여러 나라의 민속춤을 보러가려면 시간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과수 폭포의 명성으로 워낙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쇼를 하는 장소가 엄청나게 컸다. 남국의 미남 미녀들이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나와서 정열적인 선율에 열정적인 춤을 추는 것을 관람했다.
25일-
6시 30분 기상하여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상냥한 이과수의 가이드와 함께 버스로 알젠틴 국경을 넘어 이과수폭포를 보러갔다. 일명 악마의 목구명이라는 이 거대한 폭포를 보기 위해 강의 지류를 열개를 건너는 이어붙인 긴 다리를 건너던 중 일 미터는 됨직한 이구아나를 보았다. 물위로 들어난 바위에 엎디어 사람들의 눈총을 개의치 않고 졸고 있었다.
물은 깊지 않았으나 이십분이나 걸려서 건너온 넓은 강폭의 물이 우묵하고 둥그런 절벽으로 몰아 떨어져 내렸다. 폭포 주위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걷는데 거기서 솟아오르는 물보라로 우리는 온통 젖었고, 우뢰 같은 물소리로 귀가 멍멍해졌다. 구름사이로 숨바꼭질하는 강한 해를 따라 선명하고 고운 무지개가 여기저기 생겨났다.
다리를 다시 건너와서 오솔길을 따라 폭포 아래로 내려온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를 탔다. 보트는 우리를 태우고 폭포 가까이 다가가서 두 번이나 물보라 속으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왔고 우리는 속옷까지 몽땅 젖었다.
첫 번째는 두려움에 움츠리고 눈을 감았으나 두 번째는 어차피 젖는다는 생각에 흠씬 즐겨보리라 마음먹고 소리를 지르며 눈을 뜨고 물을 맞으니 아주 재미있었다.
보트를 타고 하류로 삼십분 내려와서 앞뒤가 구분이 안되는 특이하게 생긴 트럭을 타고 열대 숲을 지나오며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성장이 빠른 굵은 대나무의 마디는 이십 인치도 넘을 것 같았다.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이과수 장로교회로 갔다. 정규모임이 있는 날이 아니라 그런지 현지인들이 좌석의 반쯤을 채웠고, 한인들은 많이 오지 않아서 섭섭했다.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화려한 의상과 아름다운 선율의 하와이안 댄스에는 열광하는 모습을 보였다.
26일-
오늘은 이과수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하여 가방을 꾸리고 check out. 브라질 폭포를 관광했다. 이과수 폭포의 메인폭포가 되는 악마의 목구멍은 지리적으로는 알젠틴에 있다. 그런데 알젠틴에서 수평으로 내려다보는 것도 좋지만 브라질 쪽에서 병풍을 바라보듯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광경은 입을 다물 수 없도록 장관이었다.
폭포는 몇 마일에 걸쳐 있어서 폭포를 따라가며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하며 오솔길을 걷노라면 수없는 폭포가 새로운 그림으로 다가왔다. 넓고 큰 폭포도 있고 가늘고 아기자기한 것도 많았다. 한 번에 떨어지기보다 지층의 단계를 이루어 이층 삼층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제 폭포를 다 구경 했나?라고 생각하면 모퉁이를 돌아가면 더 큰 규모의 폭포가 나와서 보는 사람을 새록 새록 감격하게 했다.
점심 후에 새 공원으로 갔다. 여러 종류의 열대지방 새들이 알록달록 원색으로 예쁜데 너무 커서 귀여운 맛이 적고 좀 무섭기까지 했다. 상냥하던 이과수의 미녀 가이사를 작별하고 3시 30분 발 비행기로 쌍 파울로 향했다. 많은 정보를 갖고 성심껏 설명하는 가이드를 우리는 의사, 변호사와 같이 가이사로 부르기로 했었다.
이과수 비행장에서 우리는 쌍파울로 가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지만 짐은 직접 로스앤젤레스로 부친다고 했다. 우리의 모든 짐을 부치는데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잠자리를 바꾸면 잠을 잘 못자는 나는 떠나기 전날부터 잠을 설쳐서 피곤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나는 깜빡 졸았다. 눈을 뜨니 허전한 느낌이 확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늘 목에 걸고 다니던 주머니가 없다. 의자 밑에 떨어뜨렸나? 엎드려 찾아보니 없다. 캐비닛에 올려놓았던 짐을 꺼내어 찾아봐도 없다. 비행기는 이미 떠서 날고 있고, 눈앞이 캄캄했다. 거기에는 면허증과 크레딧 카드, 썬 그래스, 카메라, 현금 사백불이 들어있었다.
할 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며 모든 일정을 주관하느라 얼굴이 반쪽이 된 박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다. 쌍 파울 공항에 내려서 이리 저리로 박 목사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분실신고를 하고 기다렸다. 우리 모두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내 가방이 이과수 공항, 스크린 체크하는 곳에서 발견 된 것이 전화로 확인되었다. 쌍파울 공항에서 엘에이 비행기를 타려면 우리는 여섯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항공편이 없어 당일 찾을 수는 없었다. 면목 없지만 박 목사님께 부탁을 드릴밖에. 다행히 감사하게도 오월 일일에 LA.에 오시는 오 목사님 편으로 전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쌍파울 공항에 누군가가 “아! 이제 또 밥 안 해먹는 곳, 어디 갈 데 없을까?”라고 말하여 모두가 까르르 웃었다.
27일-
평소에 소소한 일들을 자주 잊는 나는 스스로 은근히 걱정하던 차에 이번일로 마음이 내려앉듯 무거웠다. 점점 무능력자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쌍 파울에서 밤 열두시에 출발하여 (비행시간 열 세시간) 다음날 아침 여덟시 십오 분에 로스안젤레스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남편은 나에게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동안 볕에 타기도 했고, 또 피곤하기도 했고, 화장도 지워졌으니까 그럴 테지만 나는 야단맞을 일을 대비하여 엄살을 부렸다. “반쯤 죽었다 살아서 그래”라고 말하고 분실사고의 자초지종을 얘기 했더니 살아서 돌아온 것만 고맙고 좋단다.
눈을 감으니 꾀죄죄한 파라과이 원주민 어린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이 떠오른다. 철저한 무관심과 소외 속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야 할 저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풀고, 소망을 안겨주려고 눈물을 바치는 해맑은 젊은 선교사의 얼굴도 보인다. ‘어린이여 일어나라!’ ‘젊은이여 일어나라!’ 고 외치는 함성이 남쪽에서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060501
악마의 목구멍
흠뻑 젖어서도 밝은 웃음들을
엉덩이 말리기
이과수 장로교회에서
누구나 좋아하는 하와이안 댄스
폭포를 뒤로하고